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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Artist & Space) - ⑤이강소 작가

작업실(Artist & Space) - ⑤이강소 작가

입력 2012-04-16 00:00
업데이트 2012-04-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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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의 미가 강조된 자연스러운 붓 터치의 회화, 단순한 형체의 조각과 설치 작품을 통해 관조와 동양적 사유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 이강소(69). 회화, 판화, 입체 설치, 도예,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이강소 작가의 안성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그의 작업실은 야트막한 보개산 줄기에 둘러싸인 산 비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재와 그림창고가 있는 녹슨 철골조의 작업실을 지나면 영화촬영 세트장처럼 보이는 3개의 대형 작업장 건물과 가마가 있는 벽돌 건물이 있고 그 위편으로 전시관을 겸하는 복합공간, 한옥과 양옥이 어우러진 게스트하우스용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건물 주변 곳곳에는 그의 조각 작품들이 편안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작가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이 공간에서 그는 20여년 째 바람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음악과 더불어 지내며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독서를 하고 날이 새면 농부가 밭을 갈 듯이 작업장에 나가 작업을 합니다. 산속에서의 단순한 생활이 심심해 보일 듯 하지만 그는 “혼자서 매일 바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무상(無常)을 화두로 삼아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작업합니다. 작업실도 회화, 설치, 조각 등 장르별로 분류해 놓고 붓부터 소형 크레인까지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춰놓고 작품도 보관합니다.

설치 작업실.분황사에서 나온 오래 된 배흘림 기둥을 세운 구조물들과 나무로 깎은 기둥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난 해 대구미술관 개관기념전으로 열린 설치조각전에 출품됐던 작품 ‘허(虛)’의 일부입니다. 한 구석에는 나무의자와 탁자들이 높이 쌓여 있습니다. 1973년 명동화랑에서 열린 첫 개인전 ‘소멸, 선술집’에 쓰였던 탁자들입니다.

관객 참여 형식의 행위예술로 그의 존재감을 한국 화단에 확실하게 각인시킨 그는 작가로서 뿐 아니라 미술운동가로 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실험성이 강한 젊은 작가들과 ‘대구현대미술제’를 기획하며 한국현대 화단의 중심에 서게 된 그는 1975년 제 9회 파리청년비엔날레에 참가해 국제적 화제를 낳습니다. 전시장 바닥 한 가운데에 말뚝을 세우고 주위에 회분을 뿌리고 닭 한마리를 말뚝에 묶어 놓고 닭의 움직임이 남긴 자취를 보여 준 퍼포먼스 ‘무제 75031’은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선술집(1973), 닭 퍼포먼스(1975), 누드 페인팅 (1975) , 낙동강 이벤트 (1977) 등 그의 실험정신을 보여 준 퍼포먼스 중심의 작업에서 벗어나 80년대 중반부터 회화 중심의 작품 활동에 매진합니다. 자유스럽고 거친 붓질 속에 사물의 존재가 숨어있는 작품 시기를 거쳐 80년대 후반에는 오리 사슴 나룻배가 등장하는 풍경화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회화에는 오리, 배, 사슴, 집과 같은 형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노가 없이 놓여있는 조그마한 빈 배는 1990년 전후로 그의 회화와 조각에 반복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작가에게 존재의 실체를 알려주는 도구이자 고립과 정신적 성찰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습니다. 일필휘지의 붓질처럼 간결하고 순간적인 붓 놀림이 만들어 내는 단순한 선과 점의 율동성과 공간 속에 고정된 비현실적인 형상들의 조합은 추상적이면서 심연을 건드리는 긴 울림을 남깁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결코 의도적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순간순간 연출되는 즉각적인 선들이 추상적인 이미지로 캔바스에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공백을 긴 여운으로 남기고 움직임을 최소화함으로써 감상자들에게 많은 여지를 던져 줍니다. 최근 그의 회화 속에서 색채는 점차 무채색으로 바뀌고, 형상들은 기호와도 같이 간결해집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물성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작가는 조각작품에 몰두합니다. 육면체의 변화되는 모습에 대한 조형실험을 반복했던 그는 납작한 직육면체 점토판을 바닥에 수직으로 쌓아 형태변화를 관찰하는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점토, 석고, 브론즈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물성에 대한 탐구를 계속합니다.

요즘 가장 흥미롭게 작업하는 장르도 조각입니다. 반죽한 흙 덩이를 바닥에 던져 자연스럽게 말린 뒤 가마에 굽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힘이 가해진 흙덩이는 구겨진 채 중력에 의해 주저 앉기도 하면서 독특한 모양으로 굳어집니다. 그의 조각은 형상과 질료, 그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그 속에서 움직이는 작가의 상호의존 관계성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입니다.

1993년 그는 경상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작품활동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그 이듬해 지금의 안성 작업장 땅을 구입하고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언덕 위에 작은 황토방을 짓고 겨울에는 군불을 때며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전통과 현대성의 조화에 대한 고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 만물의 시간적 질서에 대한 그의 사유는 계속됩니다.

“작업을 하면서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이 가진 ‘맑음’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젊은 시절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강소.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려앉았고 삶을 관조한 듯 소탈한 미소를 짓는 지금 그에게서는 선의 경지를 추구하는 구도승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눈빛 속에는 여전히 실험 정신에 충만한 청년 이강소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글 / 함혜리 영상에디터 lotus@seoul.co.kr

연출 / 박홍규PD gophk@seoul.co.kr

영상 / 문성호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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