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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7] 일랑 이종상

[작업실 7] 일랑 이종상

입력 2012-06-14 00:00
업데이트 2012-06-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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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랑 이종상(74). 그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에 머물지 않습니다. 작가로서 빛나는 예술혼은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역사적 소명의식과 식을 줄 모르는 탐구열을 지닌 그에게 ‘거장’이라는 수식어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수 십년 동안 ‘한국 문화의 자생성’이라는 화두를 잡고 그 정수를 작품으로 풀어내 온 일랑 이종상 화백의 평창동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갖가지 자료들로 꽉 들어차 발 딛을 틈 없는 계단을 올라 응접실로 사용하는 공간에 들어서자 유리창 앞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붓이 눈에 들어옵니다. 손잡이 부분에는 아주 작은 붓이 붙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붓은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이 화백의 평소 지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보통사람은 가누기도 힘든 커다란 붓으로 기개 넘치는 작품들을 일필 휘지로 그려냅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가느다란 붓으로 수만개의 점을 찍어 표정과 성품까지 살아있는 영정을 그리기도 합니다. 현재 사용되는 오천원권 지폐 속의 율곡 선생과 5만원권 지폐 속의 신사임당 영정은 그 가느다란 붓 끝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화면에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민족의 DNA까지 담아내는가 하면 미세한 점 하나에 자연과 우주를 품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품은 다르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한가지. 바로 한국문화의 자생성입니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유화 교습을 받으며 회화를 접한 일랑은 대전고 미술반을 거쳐 서울대 회화과에 진학했습니다. 서양화를 전공으로 택했지만 서양문화의 영향으로 우리 문화의 자생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3학년에 동양화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자생성에 대한 탐구와 한국미의 근원 형상을 찾기 위한 노력,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대한 성찰은 화가 이종상의 삶을 압축해 보여주는 단어들입니다. 우리 문화의 자생성과 그 원형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났던 그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1978년 한국벽화연구소를 설립하고 북한과 만주에 있는 고구려 고분을 직접 답사하면서 벽화를 연구한 그는 고구려 벽화의 전통기법과 예술성을 현대적 조형방법으로 복원해 내기에 이릅니다.

그의 자생문화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자연으로 영역을 확장합니다. 우리 자연이 품고 있는 정신과 역사성에 대한 탐구에 나선 그가 찾아낸 것은 우리 산하의 내면에 감춰진 에너지와 우리 민족의 근기였습니다. 이를 화면에 담아낸 것이 ‘원형상’시리즈입니다. 그는 겸재 정선이 그랬듯이 우리 산하를 발로 답사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하지만 그의 진경 산수에는 역사적 소명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독도시리즈는 일랑의 진경에 대한 의식과 역사의식이 함축된 작품입니다. 그는 1977년 미술인으로는 처음으로 독도에 들어가 이를 작품으로 담아냈습니다. 이후 그는 문화로 독도를 지키기 위해 ‘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를 조직하고 수많은 독도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생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원형상 94111-마니산’이라는 걸작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1997년 11월부터 3개월 동안 세계 문화의 심장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지하 카루젤뒤루브르에서 전시된 이 설치 벽화는 총 길이 72m, 높이 6m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강화도에서 벌어진 병인양요를 주제로 프랑스 함대의 침탈에서 시작해 우리 문화의 관용성으로 마무리됩니다.14세기의 성벽을 오브제로 활용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힘찬 필력과 예리한 역사의식, 실험적 창작기법, 조형적 완벽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2007년 작품인 태백산맥문학관의 벽화 설치 작품 ‘백두대간의 염원’(8m x 81m)은 그의 역사의식과 과학자적인 실험정신, 빛나는 예술혼이 빚어낸 또 다른 걸작입니다.

보통 작가는 엄두도 못낼 이런 엄청난 작품을 그릴 때 그는 화선지 위에서 선잠을 잔다고 합니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영감이 떠오르면 불현 듯 일어나 마치 신들린 듯 붓을 휘둘러 그것을 화면에 옮깁니다. 영정을 그릴 때는 그 반대입니다. 마치 학자처럼 치밀하게 자료 조사와 고증작업을 거쳐 역사적 인물을 재현해 냅니다. 영정을 그리는 동안에는 삿된 행동을 자제하고 마음을 정갈하게 합니다. 그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고산 윤선도의 영정작업은 그의 깊고 넓은 소양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고산 선생의 어머니와 형의 묘를 파묘해 이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두개골 골상을 3D 입체영상으로 직접 만들어 고산의 생생한 모습을 유추해 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희가 넘었음에도 그는 청년의 정신과 열정으로 연구하며 작업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작품은 단지 수단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한국화가라는 짧은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큰 인물 이종상.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그가 남긴 발자취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 지속될 것입니다.

글 함혜리 영상에디터 lotus@seoul.co.kr

연출 박홍규 PD gophk@seoul.co.kr

영상 장고봉·문성호 PD gobo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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