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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Artist & Space) - ⑨이두식 작가

작업실(Artist & Space) - ⑨이두식 작가

입력 2012-11-01 00:00
업데이트 2012-11-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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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원색들이 보색의 대비를 이루며 활기차게 전개되는 캔버스에서는 생명력이 뿜어져 나옵니다. 축제, 혹은 잔칫날이라는 이름의 연작으로 ‘기운생동’을 화폭에 옮기는 화가 이두식의 행주동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이두식의 작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방색을 주조로 한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선의 유희로 가득 찬 그의 작품에서는 삶의 에너지가 넘쳐납니다. 내부에 응집된 삶의 열정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듯 합니다.

→표현주의적 요소가 강한 잔칫날 연작을 시작한 계기는?

“우리나라 예술이 한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아요. 역사적으로 한을 품게 하는 아픈 역사여서인지 암울해요. 그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어요. 인간의 밝은 면,사계절 중에서도 봄, 여름이 있죠. 삶의 밝고 즐거운 부분을 그리고 싶었어요.”

→작품의 의미를 평가한다면?

“인간의 밝은 면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추상화에서 밝은 면을 표현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것, 암울했던 시기에서 몸부림치다시피 밝은 쪽으로 튀어나왔다는 점이겠죠.”

→88년 이후 발표한 ‘축제’ 연작은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했는지?

“이두식 작품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건 잘 볼 줄 모르는 겁니다. 10년 단위로 변화를 가졌어요. 초기에 의식적으로 암울함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당시 매우 화려하다고 했지만 지금 보면 검은색이 많아요. 밝은 색으로 넘어갔다가 최근에는 다시 색채가 빠지고 있지요. ”

열정적인 삶의 에너지가 유달리 강하게 드러나는 그의 작품은 모호하거나 애매한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화려하고 강렬한 보색의 대비는 감상자에게 직접적이고 직설적으로 다가와 일종의 미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누군가 그의 작품을 보고 마음의 병을 치유했다는 얘기는 과장이 아닌듯 합니다.

1988년경부터 그리기 시작한 페스티벌( 잔칫날, 도시의 풍경 등 ) 시리즈로 그는 국내 외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인기작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그의 작품은 화려함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추상표현주의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빠르고 경쾌하게 선과 면을 구사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드로잉적인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두식의 회화에서 드로잉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드로잉은 운동선수들의 기본 체력 관리를 위한 운동과 같아요. 모든 미술인들에게 드로잉은 꼭 필요합니다. 미디어가 발달해서 컴퓨터로 다 할 수 있지만 인간이 하는 드로잉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늘 하고 있습니다. 드로잉은 자신의 생각을, 이미지와 테마를 바로 옳길 수 있는 손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죠. ”

이두식은 1947년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 근처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본에 유학해 사진을 전공한 부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서울예고에 진학했습니다. 지금은 누가 봐도 성공한 작가임에 틀림없지만 먹고 살기 위해 수출화를 그려야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생활을 하기 위해 수출화를 그렸어요. 이름있는 작가도 아니고..7년 했습니다. 그래도 기특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하고 와서도 집에 와서 제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려웠던 시절,그래서 드로잉에 더 집착했을지도 모르겠어요. 1980년대엔 수채화 물감으로 바르고 연필드로잉을 한 후 수채화 물감으로 완결하는 그런 작품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는 화가와 대학교수로서 뿐 아니라 미술협회 이사장( 제 17대),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치는 기색없이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작업을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4500여점을 그렸고 개인전도 70회를 넘었습니다.

→작업은 주로 어느 시간에 ?

“밤에 많이 그립니다. 열두시에서 새벽까지.. 잠을 그렇게 많지 않아요. 평소에도 4시간 이상 안 잡니다. 한번 앉으면 3~4 시간을 그립니다. 술 먹고는 절대로 그림을 안 그립니다. ”

→너무 많이 그리는게 흠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 이두식이 만점을 그리면 남발이고, 피카소가 2만점 하면 좋은 건가요? 아니죠. 작품은 많아야 합니다. 다작을 하면 작품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게 무서워서 작품을 적게 해서는 안되죠. 그림을 자기 생활의 일부로, 작품 속에서 살다가는 것도 좋은 거 아닙니까?”

30여년 대학교수로 근무한 그는 내년이면 교수 정년을 맞습니다.

“후회되는 일도 많고, 보람도 많았어요. 이제는 물러날 때라고 생가합니다. 내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 계획입니다. 정년 이후에는 좀더 자유롭게 살며 여행도 하고, 휴식도 취할 좀 쉬기도 하고 그럴 계획입니다.”

그는 서울예고 시절 만난 동갑내기 부인을 10년 전 잃었습니다. 자기 표현이 솔직해서인지 외롭다는 말도 거침없이 하고, 부인이 그립다는 말도 거침없이 합니다. 외로움을 느낄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시간을 쪼개 가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는 오늘 밤에도 환하게 조명등을 켜고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글 / 함혜리영상에디터 lotus@seoul.co.kr

연출 /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영상 / 문성호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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