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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Artist & Space) -⑪김태호 작가

작업실(Artist & Space) -⑪김태호 작가

입력 2012-12-02 00:00
업데이트 2012-12-0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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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료를 쌓았다가 긁어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심상의 흐름과 리듬을 표현해 온 추상화가 김태호(64·홍익대 교수). 자기 만의 조형언어를 찾아 묵묵히 그러나 치열하게 작업하는 그의 목동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김태호는 ‘내재율’이라는 제목으로 일련의 작업을 발표해 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정한 거리 밖에서는 한 가지 톤의 모노크롬화(단색화)로 보입니다. 그러나 화면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 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작은 바둑판 모양의 요철로 이뤄진 화면에서는 무수한 색깔들이 드러납니다. 단색으로 보였던 화면은 그 안에 잠자고 있던 여러가지 색깔들이 뿜어내는 현란한 리듬으로 출렁입니다. 평면인 듯했던 작품에서는 입체감마저 느껴집니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산더미처럼 쌓인 갖가지 색깔의 물감 통입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이 많은 물감으로 그가 하는 작업은 한 마디로 허망합니다. 색층의 두께가 1~1.5센티미터에 이를 때까지 20여가지 색을 겹겹이 쳐가며 바릅니다. 그런 다음 조각 칼로 거침없이 깎아냅니다. 그것을 그는 ‘지워냄으로써 드러나는 역설의 구조’라고 말합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터운 색층에는 수많은 색들이 응결되어 있습니다. 평면이라기보다는 입체로서의 깊이를 내장한 그의 작품은 각자 다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인간의 군상을 보는 듯 합니다. 견고한 바깥의 구조에 비해 미묘한 리듬을 담고 있는 내면은 좀 더 복잡하고 신비롭습니다. 단조로울 수 있는 모노크롬 작품에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가 2000년 이후 발표해 온 ‘내재율’ 작업은 얼핏 보기엔 이전의 ‘형상’시리즈와 완전히 다릅니다. 하지만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스프레이를 사용한 에어브러시 기법으로 ‘형상’시리즈에 몰두했습니다. 입체감이 있는 수평의 선에 수직으로 인체의 이미지를 결합시켜 형상을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그는 80년대 중반 판화 작업을 거쳐 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종이작업을 시도했습니다. 바탕 칠한 캔버스에 한지를 붙인 뒤 뭉친 종이를 밀어내는 방식입니다. 이런 변화를 거쳐 그가 도달한 것이 지금의 내재율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철저한 장인기질의 소유자라고 평합니다. 무수하게 색층을 쌓아 올리고, 쌓아올린 색층을 긁어내는 작업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고 섬세한 작업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지만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과 실천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는 지난 해 30여명의 동료화가들과 함께 지리산 자락에 예술인 마을을 꾸렸습니다. 내년 봄부터는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드로잉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작업방식을 구사하면서 ‘도 닦듯이’ 치열하게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 온 그가 도달할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 집니다.

기획·취재 / 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연출 / 박홍규PD gophk@seoul.co.kr

영상 / 문성호PD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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