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서울TV

[그들의 시선] “어린 우리를 끌고 가 총질하고 매질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恨)

폰트 확대 폰트 축소 프린트하기

▲ 지난 20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만난 이옥선 할머니는 “어린 우리를 끌고 가 총질하고 칼질하고 매질하고 숱한 고통을 준 것이 일본”이라며 “오늘날까지 다 죽기를 기다리고 사죄 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0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은 고요했다. 쌓였던 눈이 녹으며 지붕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만 들릴 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이곳은, 한때 열다섯 명의 할머니가 옹기종기 모여 지냈다. 2019년 2월 25일 현재, 여섯 분의 할머니가 남았다.

정복수(104세) 할머니와 박옥선(96) 할머니, 부산 출신의 이옥선(93) 할머니와 대구 출신의 이옥선(93) 할머니, 그리고 강일출(상주, 92) 할머니와 이름을 밝히길 원치 않으시는 하모(90) 할머니. 올해로 이들 평균 연령은 94.5세가 됐다.

할머니들이 나이가 들면서 이곳 생활관에서는 과거처럼 서로를 보듬는 풍경을 볼 수 없게 됐다. 적막이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모여서 TV를 시청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거실은 텅 비었고, 유리창 너머 햇살만 들어오고 있었다.


거실을 지나 동명이인인 두 이옥선 할머니 방 앞에 섰다. 대구 출신의 이옥선 할머니는 지난해 10월 무릎수술 후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맞은 편 방에 계신 부산 출신의 이옥선 할머니는 병원 치료를 위해 외출 중이었다.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시던 강일출 할머니는 곤히 잠들어 계셨고, 정복수, 박옥선, 하모 할머니는 더 이상 혼자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와상 상태가 되어버렸다. 할머니들 절반이 튜브로 식사를 대신해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였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이제 할머니들에게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그런 연세”라며 “27년여 동안 일본의 공식 사과를 외치던 할머니들이 어느 순간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러면 안 되지…’라고 하시며 다시 힘을 내시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생활관 뒤편 추모공원에는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납골함과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사진 속 고(故) 김순옥 할머니 추모비에 ‘명예회복을 위한 가해국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가 있는 그날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어 안 소장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 달라”고 부탁하며 “역사적 진실을 우리가 잘 기억해서 할머니들이 그토록 원하는 일본의 사죄를 받아 명예회복을 시켜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9년 2월에도 여전히 일본은 과거 전쟁범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위안부 할머니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8일에는 이모(향년 94세) 할머니와 김복동(향년 93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올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두 분의 할머니가 별이 되셨다. 남은 생존자는 23명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이옥선 할머니는 “우리는 이제 누굴 보고 말하면 되겠냐”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 할머니는 “어린 우리를 끌고 가 총질하고, 칼질하고, 매질하고… 숱한 고통을 준 것이 일본”이라며 “다 죽기를 기다리고 사죄를 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지난 20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만난 안신권 소장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진실을 우리가 잘 기억해서 반드시 할머니들이 원하는 일본의 사죄를 받아 명예회복을 시켜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할머니는 “우리는 이제 나이가 있고, 죽을 때가 됐다. 하지만 우리가 다 죽는다고 해도, 이 문제만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만난 강일출 할머니와 대구 출신의 이옥선 할머니도 한목소리를 냈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다시 한 번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호소하며, “할머니들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니까… 우리가 그 문제를 잘 기억해서 많이 알려 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많은 분이 나눔의 집을 찾아와 주시고, 또 할머니들 관련 문제를 공유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블로그

서울신문 www.seoul.co.kr

주소 : 100-745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24 (태평로1가 25번지) 서울신문사빌딩 l 대표전화 : (02) 2000-9000

인터넷서울신문에 게재된 콘텐츠의 무단 전재/복사/배포 행위는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위반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서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