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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밀가루 배상’ 판결…업계 파장 ‘촉각’

대법 ‘밀가루 배상’ 판결…업계 파장 ‘촉각’

입력 2012-12-03 00:00
업데이트 2012-12-0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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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소비자 피해 첫 인정..유사소송 확대될 듯

3일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가격을 담합한 밀가루 생산업체가 중간소비업체인 삼립식품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산업계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배상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담합과 관련해 최종 소비자가 아닌 중간 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최초로 인정한 사건인 만큼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CJ와 삼양사 등 국내 8개 밀가루 제조업체가 2001년부터 5년에 걸쳐 밀가루 공급 물량과 가격을 담합해 소비자들에게 4천억원 이상 손해를 끼쳤다며 2006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시작됐다.

삼립식품은 같은해 11월 밀가루업체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2009년과 2010년 각각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1, 2심에 이어 이번에도 중간 소비자의 피해를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앞으로 담합 문제에 있어 보상 구도가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다.

당장 산업계 안팎에선 이번 소송과 관련해 농심이나 롯데 등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는 다른 제과·제빵·라면업체 등에서도 비슷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밀가루 뿐 아니라 설탕도 2007년 담합 판정을 받은 만큼 비슷한 원료 업계로 소송이 번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제과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만큼 당장 줄소송이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유사소송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며 “추가 소송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제품까지 중간 단계를 많이 거치는 전자, 자동차, 기계 등 부품 산업에도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담합 피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포괄적으로 확대된 만큼 전반적인 피해 소송 자체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단 담합이 잦은 건설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공사 수주를 위해 참여 업체들이 가격을 맞추는 입찰담합이다.

현대건설 등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4대강 살리기 사업’에서 입찰담합을 한 것으로 드러나 지난 6월 1천115억4천1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대규모 공공 공사뿐 아니라 아파트 수주에서도 종종 담합이 일어난다.

공정위는 2008년 대구도시공사가 발주한 죽곡2지구 2공구 공동주택건립 공사 입찰에서 대우건설이 중견 업체를 형식적으로 입찰에 참여하도록 해 경쟁 구도를 만든 뒤 이를 공사예정가의 99.6%에 낙찰받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레미콘 제조업계는 입찰 참여 여부와 가격 인상을 담합해 공정위에서 과징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지만 중간소비자 격인 건설사가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개별 건설사당 피해액이 크지 않고, 레미콘은 사실상 과점 시장이라 어차피 계속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담합이 적발됐다고 손해배상 소송을 낼 가능성은 적다”고 전했다.

전자업계도 담합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탁기, 평판TV, 노트북PC 소비자 가격을 담합해 올려받은 사실이 적발돼 지난 1월 공정위로부터 총 400억원대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국내 가전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하는 두 업체가 전화통화와 모임을 통해 출고가 인상, 판매 장려금 축소 등 방법으로 소비자판매 가격을 최대 20만원까지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업체는 앞서 2010년에도 공공기관에 에어컨과 TV를 납품하면서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돼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양사는 중간소비자 담합 피해를 처음 인정한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밀가루 시장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구조나 유통체계는 다르지만 독과점업체의 각종 담합에 법적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경고의 의미가 커, 정도경영·윤리경영의 고삐를 다잡는 계기로 삼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나 LG 같은 국내 간판업체도 최근까지 담합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데다 기업이미지 실추로 인한 타격이 크기 때문에 재발 방지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담합 혐의로 이미 재판에 넘겨진 정유사들은 사안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애써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밀가루는 특정 제품으로 가공·변형돼 최종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반면 기름은 완제품이 대리점을 거쳐 그대로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방식이라 단순 비교는 무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심 긴장하는 눈치다.

일부 정유사는 담당팀이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련 소송이 법원에 계류돼 있어 ‘담합’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밀가루 담합 사건’이 공개된 뒤 대외 함구령이 내려진 곳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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