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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호메고로시/이춘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호메고로시/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0-03-24 00:00
업데이트 2010-03-24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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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말로 드러내는 마음)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일본인들이 이중적이기 때문에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낭패할 수 있다는 경구다. 심지어 실제 이상으로 칭찬해 상대가 방심,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한다는 호메고로시라는 말도 있다. 칭찬하다는 의미의 ‘호메루’와 죽인다는 뜻의 ‘고로스’를 합성한 명사다. 모두 일본인들의 말은 끝까지 새겨들어야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인을 자주 만나는 한국사람들은 가끔 호메고로시 느낌을 얘기하곤 하지만 혼네 등을 과잉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들의 생존전략에서 봐야 불필요한 낭패를 면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인은 상대를 칭찬하거나 좋은 말은 하지만 욕하거나 깎아내리는 건 거의 피한다. 상대의 마음을 열어 장점을 취하려는 실용적인 태도다. 그들의 언행에 신중히 대응해야 할 이유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유신 전까지 300개 가까운 번(藩)의 번주들이 통치하는 분권사회였다. 사법권도 독립적이었다. 자연자원이 부족한 번들은 경쟁하고 협력했다. 상대 번을 칭찬, 정보를 얻어내야 생존에 유리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선진 문물을 취하기 위해 외국인을 실제 이상으로 칭찬하는 경우가 많아 호메고로시로 비쳐졌다는 해석도 있다.

일본인은 엄살이 심하다고도 한다. 일본은 큰 잘못을 인정하거나 발각되면 할복할 수밖에 없는 문화였다. 침략전쟁 죄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것이 이런 문화적 배경으로도 설명된다. 영화 나라야마부시코에는 마을에 해악을 끼친 일가족 전원을 마을사람들이 생매장해 버리는 끔찍한 장면도 있다. 약점은 들켜서도 안 되는 이유다. 약점은 철저히 감추며 상대는 치켜세워 마음을 놓게 하는 것이 엄살로 비칠 수도 있다. 역시 엄살이 아니고 생존전략이란 의미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일본 ‘엄살론’을 거론해 화제다. 최 장관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산하에 한국실 설치를 검토하는 것이 한국 배우기로 해석되자 “일본이 엄살을 떨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강한 중저가제품 시장에서 앞선 전술을 배우려는 일본 특유의 실용성을 일깨운 것으로 풀이됐다. 정말 엄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일본인은 배울 게 있으면 배운다.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이다. 제3자들이 어떻게 해석하든 일본인들은 그들의 길을 간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0-03-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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