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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잘 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잘 사는 것과 아름답게 사는 것/공선옥 소설가

입력 2011-03-31 00:00
업데이트 2011-03-3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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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소설가
공선옥 소설가
4대강 살리기의 불똥이 4대강에 포함되지 않은 섬진강에도 튀었다. 흙길이던 섬진강 둑길을 ‘자전거도로’로 만든다고 콘크리트로 포장을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둑길이 그렇게 허옇게 포장되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보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흙길을 원하는 사람들이 반대 시위를 치열하게 하고 난 뒤에야 나머지 흙길은 그나마 시멘트길이 되는 것을 면했다는 것이다.

몇년 전 내가 소위 귀향을 해서 시골에 살 적이다. 우리 집 마당에 풀이 우북한 것을 보고 논에 약을 치고 오던 동네 사람이 ‘풀 꼬실라지는 약’을 쳐준 적이 있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잡초로 푸르던 우리 집 마당이 가을도 아닌데 누렇게 초토화돼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 마당의 풀들을 그렇게 퇴치해 버린 분은 약만으로는 양에 안 찼던지, 마당을 ‘쎄멘’으로 깨끗이 발라 버리라고 성화였다.

동네 집들 중에는 흙이라고는 한 뼘도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그렇게 ‘쎄멘’으로 ‘공구리’ 친 집들이 많았다. 내가 잡초도 안 나고 깨끗하고, 비 오면 신발에 흙 묻히지 않아도 되고 곡식 말리기 좋은 ‘쎄멘 마당’을 안 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답답해했다.

나도 물론 흙마당, 흙길보다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당과 길이 기능적으로는 더 편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흙마당이 좋았다. 흙길이 더 좋았다. 흙마당, 흙길이 일상을 사는 데 더 불편하긴 하지만, 나에겐 흙이 주는 따뜻한 정서를 기능적으로 편리한 쪽에 내어줄 수가 없었다.

결국은 그것이다. 우리 생활이 그다지도 쉽게, 그다지도 빠르게 바뀐 이유는. 빠른 효과, 효율, 편리함에 불편하지만 정서적 안정과 심미적 아름다움의 가치들을 다 내어주고 만 것은. 그리하여 지금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농촌 어디를 가도 편리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위하여 망가져 버린 풍경들은 숱하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양옆에 포플러라든가, 버드나무가 울창한 개울이 들판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풍경이 흔했다. 농부들은 그 개울 옆 나무 그늘 밑에서 새참도 먹고 잠깐 눈을 붙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냇가 바윗돌을 들추고 가재를 잡고 물장구를 치고 놀던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이다.

그러나 이제 시골 어디를 가도 그런 풍경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개울이란 개울은 시멘트로 ‘직강 공사’를 해 놓았다. 물은 이제 굽이굽이 흐르지 않고 직선으로 흐른다. 논에 물 대기는 좋아졌지만, 우리는 이제 개울이 들판을 굽이굽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그 풍경 덕에 노동의 고단함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어디서도 구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잘살자는 구호 아래 우리 일상의 풍경, 환경들이 거덜나는 상황을 이제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온갖 곳을 파헤치고 온갖 곳을 ‘콘크리트 친’ 결과로 우리는 이제 잘살게 되었는가. 과연 진정으로 잘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생활의 편리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조금은 불편해도 위로와 안식을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무지막지한 행위를 앞으로도 계속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그렇게 해서 결국 남아나는 것은 무엇일까. 새마을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의 여러 부작용들을 제하고 나서 새마을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상황을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을 해야 한다면, 잘살자는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을 복원하자는 의미의 새마을운동을 제창하고 싶다. 새마을운동 때문에 망가져 버린 농촌을 아름답게 되살리는 새마을운동을 하고 싶다. 산에 가야만 숲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주변에, 마을 진입로에,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나무를 심고 포장이 꼭 필요하지 않은 길은 그냥 흙길로 놔두고 그 길에 나무와 꽃을 심고 그 길 어느 곳엔가 작은 문화공간을 지어 마을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는 마을. 그런 아름다운 마을을 우리는 진정 이룰 수 없는 것일까.
2011-03-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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