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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반성문/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성문/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1-10-26 00:00
업데이트 2011-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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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의미의 고해성사는 용서와 참회다. 여기에는 거짓이 끼어들 틈이 없다. 최초의 신분 증명 명부도 1215년 ‘고해성사 증명서’에서 비롯됐다. 모든 신도가 최소한 1년에 한번 고해성사를 하고 영성체를 받도록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했는데, 명부와 고해성사 증명서를 대조해 의식을 실천하지 않은 자는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대판 반성문이 유래한 배경이라고 한다.

사전은 반성문의 뜻을 ‘자신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보며 쓴 글’이라고 적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반성문을 쓴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선생님은 똑같은 반성문을 열 번이나 쓰게 했다(중략)/열 장의 반성문을 쓰게 한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어느날,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됐다/나는 늘 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것이다(중략)” 연탄길의 저자 이철환의 산문집 ‘반성문’이다. 무수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을 콕 집어내는 듯하다. ‘반성은 해도 후회는 하지 마라.’는 경구를 일깨워준다.

김도연의 신작 소설 ‘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은 삼십년 전의 반성을 삼십년 후 풀어놓은 소설가의 자기 고백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중학교 2학년 때 학생잡지의 어느 내용을 보고 교내 백일장에 그대로 옮겼다가 담임선생님한테 들켰다. 선생님은 혼내는 대신에 원고지 500장 분량의 반성문을 쓰게 한다. 끝내 쓰지 못하다 삼십년이 지난 시점에 장문의 반성문을 쓰면서 과거를 돌아본다.

어찌 보면 반성문은 인간에겐 업보이자 숙명이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진행형이다.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등은 반성문을 아무리 써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얼마 전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 대정부 질문 대신 ‘18대 국회 반성문’을 써 눈길을 끌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경찰의 조폭 난투극 방관, 장례식장과 유착 등 잇단 악재에 “안타깝고 할 말이 없다. 특단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반성문(?)을 썼다. 반성문은 어제 썼다고 오늘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잘못됐다면 반성문은 써야 한다. 다만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반성은 눈속임이다. 공허한 자기 메아리에 불과하다. 경찰은 지금 눈앞의 잿밥(수사권 조정)에만 맘이 있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염불(자기 정화)에 공력을 들여야 한다. 조 청장의 발언이 말장난인지, 진심 어린 반성문인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1-10-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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