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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만기 20~30년짜리 연금 들라는 은행은 믿을 만한가/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만기 20~30년짜리 연금 들라는 은행은 믿을 만한가/문소영 문화부 차장

입력 2013-03-01 00:00
업데이트 2013-03-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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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문화부 차장
문소영 문화부 차장
금융은 뜬구름을 잡는 것과 비슷해서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는 서로 정한 약속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한 덕분에 ‘약속’과 ‘신뢰’를 강조하는 대통령도 탄생했다. ‘한강의 기적’만큼이나 빠르게 저신뢰 국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호 간의 분쟁이나 야바위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장황한 것은 은행들의 20년 전 약속을 상기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탄생한 19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시행됐고, 청와대와 경제계 사람들은 돈이 지하로 숨어들 것이라며 걱정을 쏟아냈다. 그래서 당시 한일은행(우리은행의 전신)의 ‘신바람 가족통장’을 비롯해 국책은행인 장기신용은행의 ‘재산종합관리신탁’까지 그해 10월에 ‘금융실명제 시대를 맞아 고금리를 약속하는 금융상품’을 대대적으로 내놓았다. 하나은행 ‘올스타 통장’, 국민은행 ‘커플통장’, 제일은행 ‘자유적립부금’, 조흥은행의 ‘신세대우대통장’ 등이다. 2년여 뒤인 1995년 9월 23일 국가기간통신망 연합뉴스는 한일은행의 ‘신바람 가족통장’과 외환은행 ‘한가족 평생통장’ 등은 수신잔액이 1조원을 넘는 히트 상품이라고 보도했다.

1993년 당시 예금금리는 올스타통장이 연 14~15%, ‘신세대우대통장’은 6년과 12년에 각각 12.26%, 15.53%, 제일은행은 1~3년 8.5%, 5~6년 9.5%였다. 그러니까 낮게 잡아도 10년 장기예금은 연간 10% 이상이다. 은행들이 늘 강조하는, 이자가 이자를 낳는 ‘복리의 마술’을 고려하면 예금금리는 더 높아진다.

요즘처럼 3개월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의 변동금리에 따라 예금금리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을 때니 모두 고정금리다.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알 수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생계를 위해 보험·예금을 모두 해지해 버렸으니 말이다.

한일은행은 현재 우리은행이 됐다. 당시 한일은행의 ‘신바람 가족통장’의 잔액을 알아보니 지난해 11월 현재 1000억원대였다. 최근 신바람 가족통장을 약 20년 유지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1994년 9월 가입해 5년, 10년, 15년, 20년을 기한으로 4개 계좌에 각각 매월 1만원을 예금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여행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통장에는 만기수령액이 1999년에 74만 6000원, 2004년에 228만 4000원, 2009년에 491만원, 2014년에 961만 1000원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1999년에는 통장에 찍힌 대로 74만 6000원을 받았다. 그런데 2004년부터 어그러졌다. 통장을 분실했다고 하니 우리은행 창구에서 140만원만 지급했단다. 지난 2009년 15년 만기 때 운 좋게 분실한 통장을 발견했다. 우리은행은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도 절반만 지급하겠다고 버텼다. 이제 그가 예금 수령을 거부했다. 2014년에는 어찌 될까 그는 궁금해한다. 그는 지난해 말 20여년 만에 은행에서 느닷없이 보낸 ‘신탁운용보고서’를 처음 받았다며 허허롭게 웃는다.

요즘은 금융기관이 1994년처럼 만기수령액을 통장에 찍어주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는다. 최근 은행들은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대비하라며 20~30년 뒤에 수령하는 연금보험을 열심히 판다. 그러나 20년 전 판매한 ‘신바람 가족통장’을 보면서 과연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한 노후보장 약속을 지킬까 회의적이다.

symun@seoul.co.kr

2013-03-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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