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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눈] 얻는 자와 사는 자/임주형 체육부 기자

[오늘의 눈] 얻는 자와 사는 자/임주형 체육부 기자

입력 2013-09-16 00:00
업데이트 2013-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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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형 체육부 기자
임주형 체육부 기자
타이완 중동부에 위치한 화롄은 인구 40만명의 전형적인 관광 도시다. 타이완의 대표적 자연경관인 타이루거 협곡으로 유명하며, 최근 케이블 채널 tvN의 ‘꽃보다 할배’ 촬영지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화롄에서는 12년 전부터 매년 한 차례 농구 컵 대회(Kwen-Fa)가 열린다. 시가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좀처럼 없는 주민을 위해 타이완 프로농구팀과 외국팀을 초청하는 작은 국제 대회를 만들었다. 1주일가량 계속되는 이 대회는 화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축제이며, 주말에는 경기장의 3000여 관중석이 꽉 들어찰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소문이 퍼져 지난 11일부터 열린 올해 대회에는 KT가 국내 프로농구팀 최초로 참가했다. 지역 기업들이 발벗고 나서 대회를 후원하고 있으며, 200만 타이완 달러(약 8000만원)의 운영 비용이 국고 지원 없이 충당된다. 10년 넘게 대회가 운영되고 점차 활성화되는 비결이다.

국내에서도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거나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화롄과는 사정이 다르다. 주민을 위하기보다는 지자체 장의 업적을 홍보하거나 경제적 파급 효과를 노린 전시행정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관중석이 텅텅 빈 채 치러지기 일쑤다. 터무니없이 경제적 효과를 부풀린 탓에 대회가 끝나면 막대한 빚더미에 오른다. 정부에 예산 지원을 대거 요청해 국고를 낭비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의 경우 유치 신청 당시 예상 사업비는 356억원이었으나 실제 투입된 예산은 10배나 많은 3572억원이었다. 국고 투입 역시 당초 50억원에서 1154억원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는 2811억원에서 6817억원으로 3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6조 6140억원에서 12조 8485억원으로 2배 뛰었다. 최근 광주는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을 유치하기 위해 정부의 보증서류를 위조했다가 유치위원회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추태를 보였다.

화롄과 국내 지자체들의 희비가 엇갈린 것은 스포츠를 통해 얻으려는 게 달랐기 때문이다. 화롄은 농구를 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열망을 알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대회를 유치한 반면 국내 지자체들은 세간의 이목을 ‘사는 데’ 급급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지자체가 화려함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대회를 열어 성공을 거둔 경우가 종종 있다. 경남 통영은 2000년부터 국제철인3종경기를 개최해 이제는 동호인 참여가 크게 늘었다.

정부도 최근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주요 국제 대회만 국비로 지원하고 이른바 ‘마이너’ 대회는 지자체가 단독으로 예산을 마련토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가르기는 적절한 대책이 되지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해 지자체의 무분별한 대회 유치를 막고 예산을 낭비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회를 치르도록 이끄는 게 올바른 해법일 것이다.

hermes@seoul.co.kr

2013-09-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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