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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어느 장관의 자필보고서/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지금&여기] 어느 장관의 자필보고서/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입력 2013-09-28 00:00
업데이트 2013-09-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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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행 의료급여 제도의 상황과 문제점, 혁신방안에 관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보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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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 정치부 기자
안석 정치부 기자
2006년 10월 초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A4용지 15장 분량의 ‘의료급여 제도 혁신에 대한 국민보고서’라는 자료를 냈다. 유 장관은 저소득층의 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급여 제도의 취지와 문제점, 개혁 방향 등을 철학적 배경과 각종 사례, 통계, 그래픽으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한 해 4조원의 소요예산을 얘기할 때는 숫자 ‘4’ 뒤에 12개의 ‘0’을 나열하며 정부로서는 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가 잘못 설계한 제도를 고치기 위해 저소득층의 부담금을 이제라도 올릴 테니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유 장관은 추석 연휴 동안 집에서 직접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는 일반에 공개된 뒤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다른 정부도 아닌 노무현 정부가 저소득층의 혜택을 뺏는 정책을 한다고 하니 진보진영의 반발도 거셌다. 이를 의식해 장관이 직접 총대, 아니 펜대를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7년 전 얘기를 꺼내는 것은 기초노령연금 등 최근 공약을 둘러싼 거센 논란 때문이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이유로 대통령은 “죄송한 마음”이라며 사과하고 장관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한다. “약속을 못 지켰다”고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어떤 정부가 와도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주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은 왜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내용이 언론에 다 나와 있다고 해봤자 정파와 진영에 따른 갑론을박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뿐이다. 이렇다면 앞으로도 국민은 수정될 공약에 대한 일방적인 발표와 여야의 정쟁만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장관이 사임하고 대통령이 사과한 게 그들에게는 진심이겠지만, 이대로라면 정책 대상자인 국민은 앞으로 계속될 공약 수정을 구경꾼처럼 바라만 봐야 한다.

장관이 직접 보고서를 쓰는 정성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정부가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대한 진솔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다. 재정이 문제라는 뻔한 얘기 이상의 정책적 고민과 배경을 설명한다면, 공약 수정에 동의하는 이들도 지금보다 늘어나지 않을까.

ccto@seoul.co.kr

2013-09-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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