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CEO 칼럼]박지성식 리더십/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CEO 칼럼]박지성식 리더십/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입력 2010-04-26 00:00
업데이트 2010-04-26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얼마 전 우리 월드컵 축구대표팀에 관한 글을 읽다 흥미로운 분석을 발견했다. 국가대표팀 주장 완장을 찬 ‘캡틴’ 박지성의 리더십에 대한 것이다.
이미지 확대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


박지성이 전통적으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강했던 국가대표팀 분위기를 많이 바꿔 놓았다고 한다. 권위와 카리스마가 넘치던 과거 주장들과는 달리 까마득한 후배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고민도 들어주며 스스럼없이 지내다 보니 대표팀 훈련장에서는 항상 웃음이 넘친다고 한다.

강요된 통제와 규율, 경직된 위계질서 대신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통솔로 선수단의 응집력은 한층 높아졌다. 젊은 선수들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박지성을 중심으로 하나가 됐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경기력 향상으로 나타났고 국가대표팀은 박지성체제 이후 좋은 결과를 내며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었다. 이른바 요즘 주목받는 ‘수평적 리더십’의 좋은 사례라 할 만하다.

세계적 심리학자인 에드워드 드 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박지성식 리더십은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평적 사고란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생각’에 마음을 활짝 열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고정 관념의 틀을 깨고 남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하려는 태도다. 수평적 위치에서 마음을 열어놓으니 리더의 위치에 있더라도 지시와 명령 대신에 경청과 배려에 힘을 쓴다.

수평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변화지향적이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 항상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그러니 수평적 사고는, 늘 바꾸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변화의 시대’에 현대인들이 반드시 체득해야 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며 천하를 호령했던 몽골 유목민(노마드)들의 성공요인으로 수평적 사고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 광활한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했던 유목민들은 항상 옆을 바라봐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방이 트인 초원에서는 동지가 많아야 유리했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을 포용하며, 연대하는 수평적 사고의 DNA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민족과 종교, 국적이 다르다는 것이 공동체를 이루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지도자는 착취와 군림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수직사회와 달리 유목민 사회는 수평적 사회, 열린 사회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휴대전화 하나로 세계 구석구석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오늘날, 국경은 단절과 차단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빛의 속도로 돈과 정보가 오가는 시대에 우리 모두는 국경 없는 초원지대를 달리고 있는 21세기 노마드다.

건설 분야만 해도 요즘 웬만한 해외현장은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가 공존하는 인종의 용광로나 다름없다. 현대건설이 담당하고 있는 카타르의 한 플랜트 현장은 1만 5000명의 현장인원 중 단 5%만이 한국인이다.

한국인이 공사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서 외국인들에게 일방적인 통제와 지시, 강요와 명령으로 일관한다면 결코 한 걸음도 공사를 진척시킬 수 없다. 직위의 높고 낮음이 일을 일방적으로 시키고,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는 관계라면 공사 중 돌발적으로 발생할 어떤 난관도 창의적으로 헤쳐 나갈 수 없다.

다름을 존중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격의 없이 소통하지 못한다면 공사는 실패하고 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바로 수평적 사고다. 어쩌면 그것은 국경 없는 초원지대를 달려야 하는 현대인들이 끊임없이 연마해야 할 생존기술일지도 모르겠다.
2010-04-26 31면

많이 본 뉴스

‘금융투자소득세’ 당신의 생각은?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의 투자로 5000만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초과분에 한해 20%의 금투세와 2%의 지방소득세를, 3억원 이상은 초과분의 25% 금투세와 2.5%의 지방소득세를 내는 것이 골자입니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제도 도입과 유예,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일정 기간 유예해야 한다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