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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대립의 언어, 화합의 언어/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대립의 언어, 화합의 언어/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입력 2012-03-21 00:00
업데이트 2012-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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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신문 기사의 제목은 기사를 어떤 방향으로 읽을지에 대한 생각의 틀을 결정한다. 그래서 내용이 유사한 기사도 제목에 따라 독자의 인식이 확연히 달라진다. 제목은 생각의 틀을 규정하는 프레이밍(framing)과 생각을 촉발시키는 프라이밍(priming) 역할을 한다. 신문사에서는 기사를 보고 제목을 뽑지만, 독자들은 제목을 먼저 보고 기사를 추론한 다음에 세부 내용을 읽는다. 따라서 제목에서 형성된 편견이 기사 이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미국의 빈센트 프라이스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생 대상의 실험에서, 기사에 사용된 대립적 언어가 의견 양극화를 부추기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는 ‘스탠퍼드 데일리’란 학생신문 기사를 활용, ‘집단 갈등’ 조건의 학생들에게는 “인문계·자연계 전공생, 필수 이수과목 놓고 충돌”이란 제목 아래에 ‘자연계생은 필수 이수과목 추가를 반대하며 인문계생은 찬성한다.’는 기사를 보여 주었다. 반대로 ‘집단 무갈등’ 조건에는 “학사연구팀, 필수 이수과목 학생 의견 검토”란 제목 아래에 ‘학생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나뉜다.’는 기사를 보여 주었다.

연구 결과, 집단 갈등을 제목부터 강조했던 기사를 본 학생들은 자기집단과 상대집단 간 의견 차이를 실제보다 더 크게 지각했고, 그렇게 과장하여 잘못 지각한 자기집단 의견 쪽으로 동조했다. 즉, 의견 양극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집단 갈등을 강조하지 않은 중립적 제목과 기사를 본 학생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집단 간 갈등이나 대립을 강조한 기사 제목을 보면, 해당 기사를 면밀히 읽기도 전에 집단 정체성이 두드러져 이것이 이해의 틀을 형성한다. 그래서 양 집단 모두 각 집단의 규범을 실제보다 더 극단적인 쪽으로 지각하고, 그렇게 지각한 내집단 규범에 동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두 집단이 양 극단으로 쏠리게 된다. 기사 내용까지 집단 간 갈등을 강조하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진다.

우리 신문들을 살펴보면, 화합을 지향하기보다 대립을 유도하는 기사가 많아 보인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심지어 같은 여당 또는 야당 안에서도 계파를 나누어 큰 충돌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렇게 하면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사회 통합이나 협력의 가능성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서, 특히 대립적 정서를 유발하는 제목은 피해야 한다. 선거 전략의 하나로 적대감을 일으키는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전략은 우리나라 전체의 화합과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권자들도 잊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지역감정도, 이념갈등도 정치인과 언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확대될 수도 있고, 비교적 화합적인 분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서울신문은 자극적인 제목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1월 28일 자 3면 “여-기회균등의 따뜻한 경제, 야-양극화 없는 나누는 경제”처럼, 기사의 제목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잡으려 노력한 흔적도 보였다. 그러나 2월 28일 자 4면 “날 세운 박근혜, 각 세운 한명숙,” 3월 1일 자 5면 “공심위-지도부 정면충돌,” 5일 자 1면 “여야 현역 피의 월요일”에 이어 7일 자 3면 “텃밭 피의 수요일,” 8일 자 3면 “안개 낀 종로 혈투,” 10일 자 5면과 15일 자 6면 “낙동강 전투,” 19일 자 6면 “주말 대혈투”와 같은 제목들이 점점 자주 등장하고 있어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더욱 전투적인 기사 제목이 늘어날까 걱정이다. ‘난타전’이나 ‘맞짱’ 같은 표현도 껄끄럽지만, 특히 ‘학살’, ‘혈투’, ‘저격’과 같은 끔찍한 용어들은 더는 신문에 나타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현실 자체가 그러하다면 사실을 보도해야 할 신문의 입장에서 그런 용어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같은 상황에서 최대한 순화된 화합의 언어를 사용하면 좋겠다. 제목에서만이라도 갈등을 자극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2012-03-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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