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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함께한다는 것, 그 무거운 책임감[김헌주의 외교통일수첩]

아픔을 함께한다는 것, 그 무거운 책임감[김헌주의 외교통일수첩]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21-08-29 20:12
업데이트 2021-08-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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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무역의 아픈 역사 지닌 고레섬 방문
세네갈 측과 공감대 넓어지는 계기 마련
한국에 ‘백신의 공평한 접근’ 역할 기대
아프간재건·현지인 구출도 ‘컴패션 외교’
한국에 대한 긍지 잃지않게 하는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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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숙소인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 곳곳에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 합니다’는 문구가 담긴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1.8.27 연합뉴스
한국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숙소인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앞 곳곳에 ‘여러분의 아픔을 함께 합니다’는 문구가 담긴 환영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1.8.27 연합뉴스
“고레섬에 꼭 한 번 가 보면 좋겠습니다.”

세네갈 정부는 지난 17일 자국을 방문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 출장단이 꼭 가 봐야 할 장소로 고레섬을 꼽았다. 수도 다카르에서 배로 15~20분 거리에 있는 고레섬은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처참한 인권 유린이 행해졌던 장소다. 아프리카의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세네갈이 그들의 한이 서려 있는 이곳을 외국 사절단에 추천한 것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 반성 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자는 뜻일 게다.

출장단은 이날 외교차관, 경제계획·협력부 장관 면담을 마친 뒤 대통령 예방 직전, 잠시 시간이 난 틈을 이용해 고레섬을 다녀왔다. 세네갈 측 배려로 코로나19 이후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곳도 둘러보면서 출장단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대통령 예방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고레섬 얘기가 나왔다. 고통스럽지만 지울 수 없는 역사를 가진 양측은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공감대가 넓어졌고 대화는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우리 측 얘기를 경청하며 수첩에 꼼꼼히 메모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네갈은 내년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으로 대아프리카 외교를 강화하는 우리로서는 관계를 돈독히 맺어 놓을 필요가 있었는데 고레섬 덕분에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진 셈이다. 아픔을 함께한다는 것은 이처럼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중요한 일임을 새삼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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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세모나’(세네갈·모로코·나이지리아) 출장단을 이끌고 세네갈을 방문한 최종건(가운데) 1차관이 지난 17일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인 ‘고레섬’을 방문해 현지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 ‘세모나’(세네갈·모로코·나이지리아) 출장단을 이끌고 세네갈을 방문한 최종건(가운데) 1차관이 지난 17일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인 ‘고레섬’을 방문해 현지인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외교부 제공
우리 정부는 지난해 아프리카 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을 때 대륙 전체(54개국 중 53개국)에 마스크, 진단키트 등을 지원한 바 있다. 백신은 국내 수급도 빠듯해 아직 외국을 도울 여력이 안 되지만, 살 대통령은 한국에 특별히 이런 요청을 했다고 한다. 백신의 불공평한 분배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백신 물량을 틀어쥔 국가들의 ‘자국 우선주의’와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인데 한국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영단어 ‘컴패션’(compassion)은 아픔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공감을 넘어 ‘돕기 위해 행동한다’는 적극성이 내포돼 있다. 한국이 아프리카에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재건 사업을 펼치고 또 이 사업을 도운 현지인을 구출해 온 것도 ‘컴패션 외교’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아프간 지방재건팀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건 동의·다산부대 철수를 앞둔 2007년 11월. 미측의 요청에 따라 6년간 부대를 파병했고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지만, 아프간 평화 정착과 재건 지원을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바그람 미군기지에 한국병원이 문을 열었다.

한국직업훈련원도 세워졌다. 직업훈련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공덕수 전 원장은 “‘한국도 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 세계 10위권 국가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너희들도 내일에 대한 꿈과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훈련교사로 일한 현지인들은 해마다 이슬람권 금식 기간인 라마단 기간이 되면 한국에 와서 4주간 기술교육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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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지난 25일 카불공항에서 한 아프간인과 포옹하고 있다. 김 참사관은 지난 27일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 사진과 관련해 “지난해 8월부터 1년 같이하면서 매일 일한 정무과 직원”이라며 “그 친구뿐 아니라 많은 다른 친구도 반가워서 포옹했는데 그 친구가 특히 얼굴이 상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외교부 제공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대사관 공사참사관이 지난 25일 카불공항에서 한 아프간인과 포옹하고 있다. 김 참사관은 지난 27일 기자들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 사진과 관련해 “지난해 8월부터 1년 같이하면서 매일 일한 정무과 직원”이라며 “그 친구뿐 아니라 많은 다른 친구도 반가워서 포옹했는데 그 친구가 특히 얼굴이 상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외교부 제공
이번에 한국행을 희망하는 아프간인들을 무사히 데려오면서 한국은 국제사회에 ‘아픔을 함께하는 국가’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심어 줬다.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이들의 아픔이 끝나지 않았기에 작전 성공에 도취될 수만은 없다. 아프간이 안정을 되찾고 이들이 돌아갔을 때 과연 이들이 ‘한국은 참 괜찮은 나라였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에서도 아프간인을 품은 한국을 유심히 들여다볼 것이다. 공 전 원장은 “아프간인들이 한국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의 김영태 사무총장은 “선진국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라는 의미가 강한데 한국은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원하는 쪽으로 (이번 작전을 성공해) 첫 단추를 잘 끼웠다”면서도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권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수 있느냐’는 부분에 대해선 장기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김헌주 정치부 기자 dream@seoul.co.kr
2021-08-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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