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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쌀 조기관세화, 신뢰에서 풀어라/오일만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쌀 조기관세화, 신뢰에서 풀어라/오일만 경제부 차장

입력 2010-09-10 00:00
업데이트 2010-09-1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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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농정의 화두는 단연 ‘쌀 증산’이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쌀 자급률 100% 달성은 우리의 오랜 숙원이었다. 단군 이래 최초의 일이라는 쌀 자급자족을 위해 정부는 통일벼 개발과 보급, 수세 폐지, 직불금 도입 등 모든 농정의 역량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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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정치부장
오일만 정치부장
다행히 90년대 중반 우리의 간절한 소망인 쌀의 자급자족화는 이뤄졌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쌀 과잉 문제가 이제 우리의 농정을 짓누르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올 한해만도 143만t 이상의 재고 쌀이 남아돌아 창고에서 묵고 있는 쌀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보관할 창고마저 부족하다고 난리다. 농민은 농민대로 공급이 늘어 쌀값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재정 건전성으로 압박받는 정부 역시 재고쌀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쌀 조기 관세화였다. 정부는 2008년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며 발빠른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2년 넘게 정부의 설득에도 농심(農心)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다.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에 따라 2015년엔 무조건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2014년까지 시장 개방 대신 최소시장접근(MMA)에 따라 의무수입물량(TRQ)을 매년 2만t씩 늘리는 옵션을 택했다. 1993년 체결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의 성격이 강했고 값싼 국제 쌀가격을 고려하거나 농민·농업 보호 차원에서도 차선의 선택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2004년 조기 관세화를 유예하면서 불필요한 쌀들이 들어오면서 공급 과잉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사실 경제적 이치만 따지자면 쌀 조기 관세는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정부 말대로 내년부터 관세화를 시작하게 되면 8만t의 쌀 수입이 줄고 2520억원 정도의 비용이 절감된다고 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정책대로 절약한 돈으로 농촌의 고령·영세농을 지원하고 도시의 저소득층을 돕는다면 분명 농민과 정부, 국민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윈·윈 게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농민과 농민단체들은 정부나 학자들의 주장을 ‘수긍 반, 의심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농정 책임자들은 ‘아주 간단한 셈법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농민들이 야속하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의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여름 휴가 기간 농촌으로 낙향한 친구를 만났다. 농촌생활이 7년째라 어느 정도 농촌에 뿌리를 내린 친구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쌀 시장 개방 부분에 이르렀다. 그 친구 얘기인 즉, “정부 정책대로 하면 다 망한다. 정부에서 소 기르라고 해서 소에 투자했다가 망한 집이 한둘이 아니고 배추 심으라고 했다가 배추값 폭락해서 손해 본 집이 한둘이 아니다. 어떤 농민들이고 이런 손해의 경험들을 한두 번 갖고 있어 정부 얘기 별로 신용하지 않는다. 농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쌀인데, 덜컥 쌀 시장 개방했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

농민들의 이런 불신과 막연한 불안감은 수긍이 가지만 기우로 끝날 가능성도 크다. 2008년 t당 국제 쌀 가격이 1000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가격의 절반 이상이 됐다. 1999년 관세화를 전제로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처럼 400%의 관세를 매기면 수입 가격은 국내 가격의 두배가 된다는 논리다. 쌀 자체가 외면받는 상황에서 두배나 높은 수입쌀을 사먹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먹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조기 관세화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지만 반대로 농민들은 요동치는 국제 쌀 가격이 폭락할 경우를 걱정하고 있다. 졸속 개방보다는 차분한 대응을 우선한다. 일각에서는 실패한 농정 때문에 일어난 쌀 과잉 문제를 관세화 문제로 호도한다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불신을 걷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다.

유정복 신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취임 일성은 ‘신뢰의 농정’이다. 닫혀 있는 농심을 열어 불신으로 가득 찬 조기 관세화 문제를 풀어가기를 기대한다.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정책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oilman@seoul.co.kr
2010-09-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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