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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명의(名醫) 단상/심재억 사회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명의(名醫) 단상/심재억 사회부 전문기자

입력 2012-03-23 00:00
업데이트 2012-03-2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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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전문기자
심재억 전문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명의인가.’라는 다분히 속물적인 질문에 대한 저의 솔직한 답입니다. 어떤 기준, 어떤 판별식을 적용하든 거기에 걸맞은 명의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 심지어 인터넷 매체까지 가세해 경쟁하듯 주워섬기는 명의 열전을 보고 있노라면 우울한 감상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명의 명패를 달고 여기저기 얼굴 내미는 일부 의사들의 ‘장삿속’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내놓고 ‘이 사람이 명의’라고 말하려면 먼저 어떤 잣대로 쟀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사회적 합의나 동의도 없이 작위적으로 ‘명의’ 작위를 남발하는 것은 확실히 위험한 일입니다. 자칫 엉뚱한 논란을 부를 수도 있고, 혼란의 단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소연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명의래서 어렵사리 줄을 대 진료를 받았지요. 그런데 퇴원할 때까지 그 의사 두번 봤고, 들은 말이라곤 ‘수술합시다’와 ‘결과를 지켜봅시다’가 전부였어요.” 지방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놀란 김에 서울로 올라와 내로라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명의라는 의사가 대뜸 수술을 하자고 해 안도했단다. 통상 수술이 가능하다면 의료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상황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 환자는 수술 후 2년여 만에 숨지고 말았다. “암인데 죽을 수 있지요. 그런데 죽을 때까지 어디까지 치료가 가능하고, 수술은 어떻게 됐으며,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등 정말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들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화가 납니다.”

그는 명의를 ‘전지전능’의 다른 말로 이해했는지 모릅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한국 최고라는데….”라며 엉뚱한 기대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환자의 절명이 의료적으로는 도리 없는 결과였다 하더라도 이미 인플레 수준인 ‘명의’ 작위의 남용이 증폭시킨 의료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까닭 없이 아픈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명의답게 지나치게 근엄한 의사의 태도도 실망과 분노를 부른 다른 이유였을 수 있습니다.

이런 ‘명의 바람’은 특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게 합니다. 환자 탓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병을 유능한 의사에게 맡기고 싶어 하니까요. 그렇다고 병원을 나무랄 일도 아닙니다. 병원이 “우리 병원으로….”라고 호객한 것도 아니지요. 그냥 그렇게 된 것입니다. 건강보험공단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등 5개 상급종합병원에 지급한 급여비가 2조 971억원이나 됩니다. 전국 44개 상급종합병원에 지급한 5조 7133억원의 급여 중 37%를 이들 5개 병원이 차지한 것입니다. 다른 선진국도 이럴까 싶을 만큼 엄청난 환자 쏠림현상이고, 그 이면에는 ‘큰 병원 선호’뿐 아니라 “아, 그 의사” 하는 세간의 인식, 즉 소위 명의라는 의사들의 흡인력이 작용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의사들의 전문적 역량을 폄훼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언컨대, 명의는 존재합니다. 자기 분야의 전문성과 인품으로 존경받는 의사들, 정말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종 매스컴에서 명의 작위를 받았지만 그런 평가에 초연한 분들도 계십니다. 문제는 ‘바람 든 명의들’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사는 방식은 다르지만, 의사 이름으로 환자들에게 고통을 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건 사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도 묵시적일지라도 명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때가 됐습니다. 명의를 의술만으로 규정할 것인지, 거기에 사회적 기여 정도나 인품을 더할 것인지도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왜 새삼 이런 문제를 거론하느냐 하면, 의료는 생명을 다루는 존엄한 분야이고, 그래서 상업적 의도를 숨긴 ‘명의 잔치’가 혹시라도 혹세무민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곧 생명에 대한 중대한 위해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jeshim@seoul.co.kr

2012-03-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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