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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칼럼] 국가의 일, 누가 하고 있는가

[박재범 칼럼] 국가의 일, 누가 하고 있는가

입력 2010-09-11 00:00
업데이트 2010-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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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주필
박재범 주필
청의 건륭제가 수년 전 한국의 서점가에서 관심을 모은 바 있다.‘건륭 원전 평천하’라는 책은 청의 극성기를 일궈낸 건륭제가 시행한 치리(治吏)의 원칙과 사례를 주로 담고 있다. 책을 보면 건륭이 맞서 싸운 대상은 바로 도당(徒黨)이다. 건륭은 ‘관리들이 나뉘어 도당을 만들어서 일을 망치고 나라를 잘못되게 한다.’며 개탄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예전에 보기 드문 몇 가지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정치 사찰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주제는 야당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것인데, 이번엔 다른 모습이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이들 의원의 부인들이 직간접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정부 측에서 매출이 급성장하는 등 특이현상이 포착돼 사유를 조사했을 뿐이라고 밝혔음에도 의원들은 정치적 사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것 말고도 토픽감이 여럿 있다. 외교부 장관이 특채를 통해 자신의 딸을 5급공무원으로 뽑았다가 발각된 일이 그것이다. 간부 몇몇이 비밀리에 장관 입맛에 맞춰 딸에게 특혜를 주었다. 이로 인해 한국병의 하나로 지목돼온 행정고시 제도의 개편이라는 큰일이 초기단계에서 망쳐졌다. 얼마전 총리·장관 후보자 등에게 엄격한 도덕성 잣대를 들이댔던 국회의원들 역시 매월 120만원 연금을 타는 법안을 은근슬쩍 통과시킨 데 이어, 세비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에선 경찰대와 비 경찰대 간의 권력투쟁 양상이 있었다. 검찰은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과 스폰서 검사의 진상규명에 흐지부지다. 국회의원, 장관, 검경 이들 모두는 건륭 시절로 보면 관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청에서는 관리가 입법·행정·사법권을 함께 갖고 있었다. 건륭이 요즘 한국의 국회의원, 장관, 검찰, 경찰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중국 5천년 역사에는 세번의 성세(盛世)가 있었다.그중 가장 최근의 것이 강희, 옹정, 건륭으로 이어지는 청나라 때의 130년이라고 한다. 시대와 제도, 사람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시사점이 크다. 강희는 건국기요, 옹정은 토대구축기라고 볼 수 있다. 건륭은 이전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 한국은 광복 이후 50년대까지 건국기였고, 60~90년대는 토대구축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건륭의 시기처럼 발전을 이뤄야 할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건륭이 성세를 이끈 방법을 보면 관리에 대해 철저히 감독하고 상벌을 분명히 했다. 감찰관을 보내 비밀리에 관리들을 조사해 사리를 꾀하지 않았는지,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지를 살폈고, 그 감찰관도 감시했다. 관대함과 엄정함을 흑백으로 삼아 조화시키는 ‘흑백의 도’를 새로운 치리의 원칙으로 정착시켜 국리민복을 이뤄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거론한 이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은 좀더 명확하게 개념을 설명했다. 그는 “권력과 이권을 같이 한다고(갖겠다고)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는데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를 놓고 사정정국을 이끌려는 의도라든지, 자신부터 돌아보라든지 등등 흠집내기식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말들은 가당치 않다. 세상 이치는 정체하는 순간 퇴보하기 마련이다.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공동체의 혼란과 낭비를 줄이는 새 규범이 절실한 순간이다. 국민의 눈에는 나라의 미래를 위한 제안을 야당이 했건, 여당이 했건 간에 관심이 없다. 국민 다수를 편하고 좋게 하는 국가의 일이라면 누가 하든 어떤가. 국가를 튼튼히 하고 국민의 자존감을 높이면서 호주머니를 듬뿍 채워주는 경쟁을 펼치고 그 결과물로 국민의 판단을 받으면 그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논란들이 도당을 위한 것인지, 국가의 일을 하는 것인지 국민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jaebum@seoul.co.kr
2010-09-1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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