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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의 달달한 삶] 우생/소설가

[전민식의 달달한 삶] 우생/소설가

입력 2022-04-06 20:30
업데이트 2022-04-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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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주친 아파트 동 대표
임대아파트 단지에 펜스 제안
우리는 그들보다 월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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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식 소설가
전민식 소설가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동을 대표하는 분을 만났다. 아파트 일에 매사 적극적이어서 그를 응원했다. 그런 그가 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옆 단지하고 우리 단지 사이에 펜스를 치려고 논의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가 말하는 옆 단지는 국민임대아파트였다. 펜스를 치면 우리가 사는 아파트 가격이 더 상승할 거라고 덧붙였다.

잠시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러지 마시라 말했다. 한동안 나 역시 국민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사는 곳이 그 사람의 전부인 양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이를 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편을 가르고 다툼이 일면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이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일일 것이다. 잊을 만하면 이런 유형의 기사들이 뉴스에 나왔다. 근래에 들어 친하게 지내게 된 유튜버가 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을 때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런 후 유튜버로 살아가고 있는데 단 한 명도 예외없이 그의 은퇴를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은퇴했다. 그에게 물으니, 어느 한쪽에 서서 누군가를 지지한다는 건 결국 나머지 절반을 적으로 삼거나 혹은 상대는 열등하다 믿어 경멸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 말했다. 그동안 그게 가장 큰 슬픔이어서 결국 손을 놓았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용기에 손을 잡아 주었다. 한동안 백수로 살아야 하고 살아내야 할 일이 막막한 줄 알았으면서도 그는 권력의 손을 놓았다. 그도 배워 온 것이 차이 나고 가진 것이 차이 나지만 사람은 본래 높낮이가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찰스 다윈은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나 역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인데 그보다 더 흥미로운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생물학자다. 그는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열등한 인종을 모두 과감히 제거해야만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다는 학문을 천명해 사람들을 분류하려고 했다. 그의 우생학은 나치의 인종 청소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단순한 일이지만 우리 아파트에 펜스를 친다는 건, 우리가 옆 단지 사람들보다 월등한 존재라는 편견에 따른 것인데 이러한 편견 역시 타락한 학문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이 든 경비원을 함부로 대하는 일에서부터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남성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꼰대들이 청년들을 ‘~라떼’라는 말투로 훈계하고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짐승 우리와 같은 곳에 지내게 하는 등의 다양한 이면에 이런 우생학적 개념이 깔려 있다. 저들은 나보다 열등한 인종이라는 개념이.

우생학은 나치의 인종개량법에 닿아 있으며, 한 인간이 가진 이념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부류의 인간을 별다른 이유 없이 증오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그가 우생학을 알고 있어서 그런 궁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푼이라도 아파트 가격을 올려 보려는 욕망이 그를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니 단 하나인 자산을 빛나도록 만들겠다는 그의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얼굴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될 일.

뭔가 되고 싶고, 이루고 싶고, 갖고 싶은 욕망은 분명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아름다우려면, 내 상처가 아프면 다른 사람의 상처도 아프다는 걸 알아야 하고, 가진 게 부족한 자들을 깔보지 않으며, 옳은 의지를 보려 노력해야겠고, 거리낌없이 소통해야겠고, 미지의 것들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 책 한 페이지라도 더 읽어야 할 일이다.
2022-04-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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