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한쪽에서는 ‘캡처’ 대신 ‘갈무리’라고도 말한다.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천천히 살피면 통하는 데가 있다. 사전에 보이는 ‘갈무리’의 첫 번째 의미는 ‘물건 따위를 잘 정리하거나 간수함’(표준국어대사전)이다. 어떠한 것을 보기 좋게 정리해 놓는다는 것이기도 하고, 안전하고 적절하게 보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갈무리’의 이런 뜻을 참고해 ‘캡처’의 순화어가 됐고, 국어사전에는 정보통신 용어로 오르게 됐다.
1990년대는 피시(PC)통신 시절이었다. 피시통신 이용자들은 ‘전산용어 한글화 운동’을 펼쳤다. 이들 사이엔 컴퓨터의 대중화를 위해선 컴퓨터 관련 용어를 우리말로 다듬는 게 시급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피시통신상에서 일어난 ‘한글화 운동’은 분위기를 탈 수 있었다. 이들은 컴퓨터와 관련한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새로운 말도 만들었다. ‘갈무리’(캡처), ‘자료’(데이터), ‘내려받기’(다운로드), ‘자판’(키보드), ‘글꼴’(폰트) 같은 말을 대신 써 나가기 시작했다. ‘늘기억장치’(ROM), ‘막기억장치’(RAM), ‘큰글쇠’(엔터키), ‘무른모’(소프트웨어), ‘굳은모’(하드웨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의 ‘한글화 운동’엔 열의가 가득했다. 한 피시통신은 화면의 항목 이름으로 ‘갈무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 사이에선 ‘갈무리’가 대세이기도 했다. 피시통신 시작 화면엔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길’이라는 문구를 띄워 놓기도 했다. 이들의 바람처럼 한글날은 국경일이 됐다. 지금 ‘표준국어대사전’의 ‘갈무리’는 피시통신 당시의 의미를 반영한 것이다.
‘갈무리’는 1997년에 나온 ‘국어순화용어자료집’에도 올라 있다. 2012년 국어심의회는 ‘캡처’ 대신 상황에 맞춰 ‘갈무리’ 또는 ‘장면 갈무리’, ‘화면 담기’를 쓰라고 제안했다. 국어심의회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어정책 자문기구다. 국어학자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전문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국어정책을 집행하는 쪽에서는 ‘갈무리’가 더 퍼지기를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캡처’를 더 많이 사용한다. ‘캡처’가 눈과 귀에 더 익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갈무리’는 탐탁지 않게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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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