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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녹색야구’의 일석이조/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녹색야구’의 일석이조/육철수 논설위원

입력 2010-02-27 00:00
업데이트 2010-02-2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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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참 섬세한 경기다. 다른 종목도 보기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만 야구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야구경기의 기록지에는 투수가 던지는 투구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고 표시해야 할 정도다. 스트라이크존의 상하 폭은 선수마다 다르다. 시원찮은 주심을 만나면 경기의 흐름이 뒤집히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팽팽한 경기의 결정적인 순간에 판별이 아리송한 볼을 스트라이크로, 스트라이크를 볼로 처리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심판의 미미한 사심(私心)조차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예민하다. 어느 심판의 취중 고백에 따르면 마음만 먹으면 승부쯤은 간단히 조작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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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철수 논설위원
육철수 논설위원


심리전은 야구의 또 다른 섬세함이다. 투수와 포수의 사인 교환과 투수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으려는 순간은 서로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투수와 타자가 마주섰을 때 선수들의 긴장감이 이입돼 함께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야구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전할 때 이따금 ‘선수의 감정’에 몰입해 보는 것은 2~3시간씩 걸리는 야구를 지루하지 않게 즐기는 요령이기도 하다.

‘녹색야구’를 얘기하려다 서설(絮說)이 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올해 시즌부터 저탄소 녹색생활을 야구경기에 도입한다는 소식이다. 운동종목에까지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의 거센 바람이 불어닥칠 줄은 예상하지 못한 터라 처음엔 ‘스포츠에 무슨’이란 생각을 했다. 문학·잠실·사직·대전야구장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갖추고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로 바꿔 친환경 녹색 야구장을 만든다는 계획은 이해할 만했다. 이렇게 해서 이산화탄소 154만t을 줄여 여의도 5배 면적에 2년생 소나무 1382만그루를 심는 효과를 낸다 하니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은 야간 경기시간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투수에게 ‘12초 룰(Rule)’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루상(壘上)에 주자가 없을 때 투수가 타자에게 12초 이내에 공을 던져 주지 않으면 경고를 받고, 재차 그러면 그 직후 던지는 공을 볼로 처리하는 규칙이다. 투수가 쓸데없이 투구시간을 끄는 것을 막자는 취지인데, 그깟 몇 초 줄이려다 야구의 참맛을 빼앗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KBO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 보니 에너지 낭비의 틈새를 기막히게 집어낸 것 같아 감탄했다.

프로야구의 평균 경기시간은 2008년에 3시간16분인데, 지난해엔 3시간22분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 겸사겸사 사문화(死文化)한 경기촉진 규칙을 꺼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기촉진 규칙은 예전엔 없었다. 한 경기에 유력 투수 2~3명이 투입되던 1980년대엔 평균 경기시간이 2시간대였다. 그러나 투수층이 두터워지고 교체 횟수가 늘어나면서 시간을 허비하자 2003년에 ‘15초 룰’을 도입했다고 한다. 이번에 3초를 더 줄인 것이다. 미국은 12초 룰을, 일본은 15초 룰을 시행 중이라 하니 그 나라들도 투수의 시간끌기를 탐탁잖게 여기는 모양이다. 이 규칙은 경기에서 실제 효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투수는 이 규칙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경기진행이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시간을 줄이려는 KBO의 복안은 또 있다. 공수교대 시간을 단축하고, 경기 중간에 운동장을 정리하는 클리닝타임을 줄이는 등 단 몇 분이라도 줄이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이렇게 되면 전기 값을 아끼는 ‘녹색야구’에다 경기에 박진감과 속도감을 더해 ‘팬 프렌들리’ 프로야구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든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다.

축구·농구·배구 등 다른 종목들도 야구처럼 ‘녹색’을 접목할 틈새를 찾아보면 적지 않을 것 같다. 하다못해 관중을 열받지 않게 하는 페어 플레이도 녹색서비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녹색을 빼면 뭔가 허전하고 지구에 죄짓는 기분 아닌가. 온난화 방지에 스포츠도 예외가 아닌 시대다.

ycs@seoul.co.kr
2010-02-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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