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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커피 한잔 하실래요?”/이순녀 논설위원

[서울광장] “커피 한잔 하실래요?”/이순녀 논설위원

입력 2010-04-22 00:00
업데이트 201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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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이기수 경기 여주군수가 같은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에게 2억원을 공천 뇌물로 건네려다 체포된 사건은 고질적인 돈 선거의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터질 게 터졌을 뿐, 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라며 애써 무심한 척하려 해도 천안함 침몰 20일 만에 실종자 38인의 시신이 수습돼 온나라가 비통함에 젖어 있던 때, 일신의 영달을 위해 검은 돈을 은밀히 준비한 후안무치함에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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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국제부 차장
이순녀 국제부 차장
여야는 앞다퉈 깨끗한 정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장의 구태는 여전하다. 경찰청이 지난달 22일부터 선거사범수사상황실을 통해 선거사범을 단속한 결과 한 달 새 1720여명이 적발됐다. 온국민의 눈과 귀가 천안함 사건에 쏠려 있는 와중에도 6·2지방선거와 관련한 부정부패의 독버섯은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돈으로 선거를 치르고, 당선되면 각종 이권에 개입해 금품을 챙기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구두선에 그치기 일쑤인 정치권의 자정 표명과 사정당국의 엄포만으로는 지방선거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령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요원해 보인다.

답은 유권자에게 있다. 가장 확실하고 명쾌한 해법이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시장, 구청장, 교육감 정도만 이름을 알 뿐 시의원이나 구의원, 교육위원은 누군지 잘 모른다. 한꺼번에 8명을 뽑아야 하는 이번 선거가 솔직히 귀찮고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도때도 없이 들어오는 선거홍보용 문자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스팸번호로 처리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거기서 거기라는,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이 선거 무관심으로 표출된다. 지방선거 투표율이 매번 50%대에 그치는 건 이런 유권자들이 두 명에 한 명꼴이란 얘기다.

여기엔 정치가 술자리 안주로는 주목받지만 진지한 토론이나 유쾌한 수다의 소재가 되긴 어려운 우리 사회의 풍토도 한몫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미국에서 시작돼 국내에도 유입된 ‘커피파티(coffee party)’운동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2월 한인 2세 애너벨 박이 주도해 설립된 커피파티는 참가자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정치에 대해 토론하는 진보 성향의 소규모 지역모임이다. 보수 색채의 티파티(tea party)운동과 더불어 풀뿌리 민주주의 정치참여의 새로운 형태로 떠올랐다.

당파성을 떠나 커피파티의 지향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깨어 일어나라.(Wake up and Stand up.)’를 모토로 내건 커피파티는 “정부는 국민의 적이 아니라 집단적 의지의 표현”이며, “미국민이 직면한 도전을 위해 민주주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깨어 있는 유권자, 과정에 참여하는 유권자만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법이다. 국내에선 지난 14일 발족한 ‘2010여성유권자희망연대’가 커피파티를 만들었고, 한국청년연합(KYC) 서울지부도 홈페이지를 통해 커피파티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집 근처 동네에서 만나 지역정치와 선거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을 즐기자는 취지는 마찬가지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Can we have coffee, America?)” 미국 커피파티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떠 있는 이 문구를 클릭하면 언제, 어느 지역에서 커피파티가 열리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가벼운 만남을 제안할 때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이 풀뿌리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여는 열쇠말로 진화한 셈이다. 물론 반드시 커피를 마셔야 할 필요는 없다. 차도 좋고, 주스도 좋다. 알코올 기운에 취해 대책 없이 정치를 몰아세우는 대신 말짱한 정신으로 공약의 허실, 후보들의 면면을 따져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수다가 스트레스 해소의 특효약이란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 정치 수다는 민주주의 실천까지 덤으로 따라오니 금상첨화 아닌가.

coral@seoul.co.kr
2010-04-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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