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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B급 경제대책과 행동하는 용기/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B급 경제대책과 행동하는 용기/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20-04-23 20:34
업데이트 2020-04-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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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하 논설위원
전경하 논설위원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면서 각국 정부와 통화당국은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국가별 대책의 내용과 속도에 대한 비교평가가 가능해졌다. 한국 정부는 방역은 잘했다. 하지만 경제대책의 내용과 속도는 ‘B급’이다. 방역도 질병관리본부가 사령탑 역할을 잘했지만 헌신적인 의료진, 두 번이나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킨 대다수 국민, 다른 제품 개발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코로나19 의료장비 개발에 뛰어든 민간기업 등의 역할이 크다. 한국 방역이 뛰어나다는 외국 칭찬은 한국민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이다. 경제 사령탑과 통화당국은 무엇을 했을까.

지난 2월 마스크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수습을 떠안은 부처는 기획재정부였다. 기재부는 재정·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이고 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담당이다. 기재부 경제정책국과 정책조정국은 코로나19가 덮쳐 오는 경제현장이 아니고 한번도 다뤄 본 적 없는 마스크에 한 달 정도 매달렸다. 기재부 공무원이 뛰어나지만 국가의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부처별 업무영역이 있고 소속 공무원이 있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았으니 마스크 대책 초창기 혼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코로나19 1차 추경은 ‘쿠폰 추경’이다. 저소득층·노인 등에게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을 줬고, 소상공인에게는 대출금리를 내려줬을 뿐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2차 추경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위한 원포인트 추경이지만 이마저도 현금이 아닌 전자화폐, 지역상품권이다. 받아야만 코로나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맙긴 한데 너무 느린 데다가 그나마 손에 들어오면 어디서 쓸 수 있는지 찾아다녀야 한다.

독일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지원을 신청한 3일 만에 계좌로 돈이 들어왔고 미국도 지난 13일부터 현금이 지급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정부의 신용보증하에 시중은행들이 기존 거래고객 정보를 이용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대출 신청 30분 만에 현금을 계좌에 넣었다. 한국의 소상공인은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기관이 다르고 시중은행에서 대출받는 데 며칠 때론 몇 주가 걸린다.

중앙은행도 느리긴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코로나 1차 추경 논의가 한창이던 2월 27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지난달 3일과 15일 예정에 없던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각각 0.5% 포인트, 1.0% 포인트 내렸다. 특히 일요일인 15일의 금리 인하는 몇 시간 뒤인 월요일 아시아 증시 개장 전에 나왔다. 한은은 그 월요일 오후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내렸다. 기재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20조원 규모의 회사채·기업어음매입기구 설치는 연준이 지난달 17일 발표한 기업어음매입기구(CPFF)의 한국판이다.

공과금 납부나 서류 발급 등 관공서를 이용하다 보면 한국은 진짜 빠르고 외국은 한없이 느린데 코로나19 경제대책에서는 정반대다. 낯선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 몰랐을까 아니면 행동할 용기가 없어서일까. 외국 정책을 아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따라하면 된다. 그러나 권한 없이 책임만 덮어쓸까 봐, 몇 년 뒤 감사원과 검찰이 여론에 떠밀려 결정 과정을 다 뒤지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눈에 보이는 것만 하려 들면 답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드라이브·워킹스루 같은 담대한 상상력은 보이지 않았다. 금융위기 당시 연준 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자서전 ‘행동하는 용기’에 이렇게 썼다. ‘이례적 상황에 직면한 정책 입안자라면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문 대통령 지시대로 경제부처가 참여하는 경제중앙대책본부가 꾸려진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1.4%인데 2분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경제상황에, 어떤 대책이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것만 적은(포지티브) 법령이 아니라 사익 추구 등 중대한 문제가 없는 한 할 수 없다고 적힌 것 빼고는 다 할 수 있는(네거티브) 정책환경이어야 한다.

이젠 코로나19 이전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변양호 신드롬’(공무원이 책임질 만한 결정을 피하는 현상)으로 돌아가서도 안된다. 감사원이, 국회가 그리고 검찰이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정책만으로 판단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lark3@seoul.co.kr
2020-04-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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