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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엽렵(獵獵)/황수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엽렵(獵獵)/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5-05-05 23:40
업데이트 2015-05-0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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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멋모르고 좋았던 말이 있다. “참 엽렵하구나.” 뭉기적거리는 나를 재빠르게 움직이게 만들 때 할머니는 늘 그 말씀을 앞세웠다. 무슨 뜻인지 선명하진 않았다. 그저 기분 좋은 언어의 조합이다 넘겨짚었을 뿐. ‘슬기롭고 민첩하다’란 사전적 의미를 한참 뒤에야 알았다. 나의 게으름을 신통하게 무력화시키는 고단위 ‘당근’ 처방이었던 셈이다.

잠 안 오는 봄밤, 한시 몇 수 뒤적이다 무릎을 쳤다. ‘풍포엽렵롱경유(風蒲獵獵弄輕柔) 사월화개맥이추(四月花開麥已秋)’ 부들잎 하늘하늘 가볍게 흔들리고, 사월이라 화개현에는 보리 벌써 익었네…. 바람에 팔랑팔랑 나부끼는 모양새. 그 또한 ‘엽렵’이라니!

사방에서 유록빛 여린 잎들이 사념 없이 바람을 타는 이즈막. 온 천지가 엽렵의 아우성이다. 오뉴월 지나 청록물 짙어 무거워지면 저 잎들이 저렇게 엽렵할 수 있을까. 가을이 닥쳐 수액이 마르면 또 무슨 수로 저렇듯 상쾌하게 엽렵할까. 만사에 때가 있다. 누구보다 엽렵해야 할 사람이 제발 엽렵했으면 좋겠다. 오지랖이 넓다. 비워 둔 총리의 자리가 왜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지. 눈부시게 엽렵했던 사월도 진작에 갔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5-05-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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