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경숙의 상처를 위한 변명/황수정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경숙의 상처를 위한 변명/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15-06-23 17:58
업데이트 2015-06-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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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경숙을 오랫동안 좋아했다. 열여섯에 고향 정읍을 떠나 서울의 야간 산업체 고등학교를 다닌 그는 낮에는 구로공단의 여공이었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앞에서도 머릿속으로 ‘난쏘공’(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노트에 옮겨 적었던 소녀다. 문학 지망생의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독자라면 다 안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내력은 등단 초기 작품들로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독자의 눈에 그런 그는 늘 위태롭고 안쓰러운 글꾼이기도 했다.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뭉개며 삶을 살아내는 족족 작품의 재료로 ‘털리는’ 작업을 스스로 반복했으니까. “제 살을 파먹는 듯한 글쓰기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한 평론가들이 일찍부터 많았다.

작가의 위기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제 살을 모두 파먹은 뒤의 절필 선언이 아니라 표절 시비다. 어이없는 논란이 다시 불거졌던 순간 독자들은 직관적으로 그를 변명했다. 문제는 필사(筆寫)다, 박경리 박완서 오정희의 글을 한 자 한 자 베끼며 글쓰기를 다진 작가였다, 작가적 영감이 통했던 표현들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체화됐을 수 있다…. 그가 무대응으로 일관한 지난 며칠 동안 독자들은 난감했다. 검찰 고발로까지 문제가 커지고서야 입을 열어야 했을까. “일본 소설 ‘우국’을 읽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해명의 요지다. 문제의 단편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고 했다. “베낀 기억은 없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해두겠다”쯤으로 들렸다. 그를 위기 상황에서 돌려세우기엔 때를 놓친 해명이다. 독자들은 또 안타깝다.

고백컨대 기자로서 그를 좋아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문학 담당 기자들에게 언제부턴가 그를 만나는 일은 별 따기가 됐다. 작품 밖에서의 소통에 서툰 작가라 접어 주기엔 작가의 행보가 그러지 못했다. 대형 출판사 몇을 오가며 작품 출간을 반복하는 사이 판매 부수는 막강해졌다. 막강 출판사의 비호 속에 높아진 울타리 안에서 나오지 않는 ‘문단 권력’의 대표 작가로 분류됐다. 기다렸다는 듯 지금 문단에서 소나기 같은 매를 퍼붓는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의 해명에도 파문은 쉽게 수습될 것 같지 않다. 자기변명을 하고 있다는 성토가 쏟아진다. 사랑을 받았던 만큼 작가의 상처는 마땅히 깊어야 할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필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항아리에 묻더라도 계속 쓰겠다고 했다. 자식 같은 글을 항아리에 묻는 일은 절필보다 더 아플 것이다. 그의 몫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묻는다. 그 많던 표절 시비의 주인공들은 어디로 갔나. 한국 문학계를 신경숙이 혼자 결딴냈나. 답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5-06-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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