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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바람과 이혼/김성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바람과 이혼/김성수 논설위원

김성수 기자
입력 2015-09-15 18:02
업데이트 2015-09-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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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단한 일을 했기 때문에 웃고 있다. 결혼을 끝냈다. 해피 디보스(Happy Divorce)!”

“모든 게 끝나서 웃는 게 아니다. 다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혼 서류에 사인한 젊은 부부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들이다. ‘이혼셀카’다. 캐나다를 비롯한 외국 얘기다. 이혼한 부부가 해맑게 웃으면서 이혼 서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법원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은 낯설다. 이혼 후 원수가 되기 십상인 우리로서는 문화 차이를 느끼게 된다.

부부가 갈라서려면 서로 합의해 협의이혼을 하거나 재판을 해야 한다. 재판까지 가려면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민법 840조에서는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등 5가지 이혼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제약은 또 있다.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 파탄의 원인 제공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유책(有責)주의다. 1965년 ‘첩을 얻은 잘못이 있는 남편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첫 판결을 한 뒤 50년간 이 같은 원칙을 유지해 오고 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이 적반하장 격으로 부인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축출이혼’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가부장적 사회였기 때문에 최근 현대적 가족 개념에 맞춰 결혼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을 따지지 말고 누구나 이혼을 청구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파탄(破綻)주의’다. 이미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운 부부에게 고통만 더 줄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62년 만에 사라지면서 “간통을 했더라도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파탄주의로 바꿔 유책주의 이혼제도를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유일하다. 미국은 1969년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1985년 모든 주에서 파탄주의 이혼을 도입했다. 영국도 1969년에, 일본도 30년 전부터 파탄주의로 바꿨다.

하지만 부정행위로 결혼을 깨 놓고 배우자의 뜻에 반해 해방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건 권리남용이라는 반론도 여전하다. 서울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파탄주의 채택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이 85.5%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법원도 어제 바람을 피운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심리에 참여한 13명의 대법관 중 유책주의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7명,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6명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잘못이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이혼을 강요당하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여성이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대책 등 입법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성수 논설위원 sskim@seoul.co.kr
2015-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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