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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두 날개로 날아라/오영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열린세상]두 날개로 날아라/오영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입력 2010-03-25 00:00
업데이트 2010-03-2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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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리콜사태가 터진 뒤, 일본 내 반응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북미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시점에 리콜사태가 터진 만큼 자국 자동차업계의 실적에 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둘째, 그간 북미 고급차 시장에 주력해 온 상황에서 강력한 원가절감이 요구되는 신흥개도국에 진출하는 것이 가능한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셋째, 사태발생 이후 리콜-경영진 사죄-후속조치 발표 등 일련의 수순을 따랐음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한 ‘도요타 때리기’가 통상문제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넷째, 기존 제품에 IT·바이오 등이 부가된 융·복합 제품이 발달하는 가운데 혼을 담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한 우물만 판다는 ‘모노즈쿠리’ 정신에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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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일리 있는 반응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비록 도요타 사태로 다시 불거지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문제가 편향된 글로벌 감각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공세적 글로벌 감각의 문제점이 노출됐는데도 이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동북아 국가 중 가장 발전이 더뎠지만 외국문물의 적극적인 수용과 러·일, 청·일전 승리와 조선 강점 등의 수순을 밟으며 아시아의 맹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개항 초기 나라의 독립을 걱정하던 순수성이 침략적 군국주의로 변질되면서 패망의 길을 걷고 말았다. 첫 번째 성찰의 기회였다.

패전국 일본은 다시 일어섰다. 미국의 원조와 한국전·베트남전은 일본경제에 특수를 안겨주면서 신속한 회복을 도왔고, 급기야 유럽을 제치고 미국과 2강 구도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상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고 세계적으로 스시가 최고급 음식으로 대접받자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인 ‘팍스 자포니카’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일본의 공세에 위협을 느낀 미국과 유럽이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강세에 합의하면서 일본은 다시 위기에 빠져들었다. 두 번째 성찰의 기회였다.

일본의 생각은 달랐다. 좋은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판로는 확보되고, 따라서 번영은 계속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적절한 속도의 환율조정을 게을리하다가 갑자기 ‘엔고’를 맞은 일본은 다시 좁은 시야에 갇히고 말았다. 시장개방 같은 보편적인 방법보다 금리인하로 대처했고, 이로 인해 자산에 거품이 일자 금융개혁이 아니라 돈을 풀어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고, 세 번째 성찰의 기회였다.

그래도 일본 제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였지만, 이번에는 ‘최고의 품질이면 비싸도 괜찮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선진국 소비가 약화되는 시점에 한국이 중간 가격대의 고품질 제품으로 신흥시장에서 성과를 올리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번에야말로 구태의연한 관행의 타파와 전방위적 혁신을 통해 편향된 글로벌 감각을 바로잡아야 했지만, 처방은 원가절감이었고 결국 도요타 사태를 맞았다. 네 번째 성찰의 기회가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20세기 초 부국강병의 길을 걸으면서 이웃국가와 공존·공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미국경제가 하락세로 접어든 1970~1980년대에는 세계 최고를 지향하면서 상호주의를 망각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종합산업이라는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외부 환경의 변화를 놓치고 말았다. 일본사회와 일본기업, 나아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기세를 올릴수록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적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잘나가던 기업이나 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는 거의 언제나 혼자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세적·일방적 글로벌 감각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그간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외향적 글로벌 감각이 커갈수록 국제사회가 믿고 따르는 규범·가치관·제도를 자신의 내부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그 기업과 사회는 안팎으로 균형 잡힌 글로벌 감각을 두 날개 삼아 다양한 행위자가 공동으로 엮어가는 네트워크적·소통적 세상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2010-03-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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