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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국가위기와 정부대변인/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가위기와 정부대변인/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입력 2012-01-03 00:00
업데이트 2012-01-0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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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상황에서 ‘대변인’의 역할은 막중하다. 혼선을 방지하고 한목소리를 내는 데 대변인은 필수적이다. 위기에 강한 조직은 평소에 치밀한 위기관리계획을 세워둘 뿐만 아니라 대변인을 미리 엄선해 두고 반복훈련을 통해 위기에 대비한다. 대변인의 역할은 위기발생 초기에 특히 중요하다. 위기관리의 성패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대변인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려면 종합적인 상황과 정보 장악은 기본이다. 이를 위해 조직 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회의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변인만은 고정 멤버로 참석하도록 한다. 국내외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위기관리의 기본 수칙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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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유재웅 을지대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김정일 사망’은 돌발적인 국가 위기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후 우리 정부의 위기 관리능력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망 시점에 대한 정부의 인지 시기, 대북 첩보 능력 등에 대한 비판은 위기에 대비한 정부의 탐지 능력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 정부의 대변인 시스템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해 준다.

구체 사례를 보자. 북한 측이 김정일 사망을 공식으로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0일, 정부는 ‘북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관련 정부담화문’을 발표했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정부담화에서는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전하면서, 정부가 우방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상황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정부방침에 협조해 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발표는 통일부 장관이 청와대 기자실에서 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김정일 사망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첫 공식 입장 표명이었다.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통일부 장관이 정부담화를 발표했다는 것이 반드시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외교안보장관회의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회의결과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청와대 등에서 직접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부담화문’이라고 타이틀을 붙여 정부가 발표를 할 때, 우리 정부의 공식 ‘대변인’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현행 정부조직법 제30조를 보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 예술, 영상, 광고, 출판, 간행, 체육, 관광에 관한 사무와 국정에 대한 홍보 및 정부발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 정부의 대변인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라는 말이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국가 위기가 발생했는데, 위기 발생 초기를 비롯해 정작 정부 대변인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민 앞에 나서서 상황을 설명하거나 정부의 입장을 표명한 것을 언론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장관회의에 정부 대변인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했는지, 아니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기 때문에 제외됐는지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면, 정부담화는 통일부 장관보다 정부 대변인이 직접 발표하는 것이 모양새가 더 나았을 것이다. 만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못했다면 이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소통’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정부가 정부 대변인 제도를 스스로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만든 것이고 위기관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통해 정부 대변인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법 제도 개선을 통해 명과 실을 일치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부 대변인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시작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정부 대변인 소임을 부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보다 나은 대안은 있는지, 또 청와대 대변인과 총리 대변인, 정부 대변인, 각 부처 대변인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역할 분담을 할지가 핵심이 될 것이다. 위기는 반복된다. 국가적 위기에 유관기관이 긴밀히 협력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국정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기 위한 소통 강화를 위해서도 정부의 대변인 제도 개선은 시급하다.

2012-01-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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