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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애국가의 역사적 함의/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애국가의 역사적 함의/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입력 2012-06-29 00:00
업데이트 2012-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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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국가(國歌)는 국기와 함께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국민 통합을 위한 대표적 표상이다. “상뎨는 우리 황뎨를 도우8/셩수무강하8” 1902년에 대내외에 공포된 ‘대한제국 애국가’는 상제(上帝)에게 전제군주의 성수무강(聖壽無疆)을 기원하는 구절로 시작된다. 그러나 하늘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돕지 않았다. ‘nation’은 ‘국민’으로도 ‘민족’으로도 번역된다. 사실 1905년 이전 민족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고 ‘백성·신민·인민·동포’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분을 넘어선 동등성의 어감(語感)을 느끼게 하는 ‘동포’도 국권의 주체로서 평등한 정치 공동체의 성원은 아니었다. 당시의 신문·잡지·역사서 등 인쇄매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도 평등한 근대 민족의 창출이 아니라 황제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당시 민권은 국권보다 하위 개념으로 국가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었다. 백성을 국민으로 만들기보다 신민(臣民)으로 잠자게 하려 한 대한제국은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대한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국망(國亡)의 위기가 몰아닥치자 사람들은 전제군주가 아닌 민초들 자신을 이 땅의 주인으로 호명(呼名)한 새로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충성의 대상은 황제에서 민족으로 바뀌었다. 민초들은 신민이기를 거부하고 미래에 올 새로운 공화주의 국가의 국민이 되기를 꿈꾸는 민족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10년 우리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식민지 국민이자 ‘천황’의 신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일제 치하 36년간 애국가는 태극기와 더불어 마음속으로만 부르고 흔들 수 있었던 금지된 상징이었다.

1945년 8월 15일 도둑과 같이 광복이 찾아오자 사람들은 다시 태극기를 꺼내들고 애국가를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을 모델로 한 공산주의 국가 수립을 꿈꾸며 “만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조국 쎄쎄쎄르(소련) 만세! 세계혁명운동의 수령 스탈린동무 만세!”를 외친 남로당 당수 박헌영 같은 이에게 태극기와 애국가는 더 이상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체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아니었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굳기 전에/ 혈조(血潮)는 깃발을 물들인다.” 북한이 1948년 8월 인공기를 사용하기 전까지 좌익은 손에 든 태극기를 부인하는 ‘적기가’(赤旗歌)를 애국가 대신 불렀다. “마음속에 그려보던 태극기가/ 푸른 하늘 밑에 물결칠 때/ 막혀가던 핏줄도 용소슴처 흐르고/ 꿈이 아닌 이 순간에 자유의 새암은/ 어느 새 우리들의 몸을 씻겨 주었다/ 자유의 인민이 되라고/ 권력의 인민이 되라고/ 일장기를 고친 기가 무슨 우리의 기드냐/ 불 끓는 우리 마음에 그 짓 기는 살러지리라/ 거리를 뒤덮은 저 붉은 기/ 붉은 기를 억세인 그대들 손 안에/ 모든 권력은 쥐어지리라/ 날러라 붉은 기/ 이 땅 위에 날러라.” 뒤에 북한 국가를 작사한 박기영이 1945년 10월에 지은 ‘날러라 붉은 기’라는 시의 한 대목은 3·1운동 이후 이 땅 사람들의 뇌리에 독립의 강력한 표상으로 작동하던 태극기를 전술적으로 공산혁명에 활용하려 한 그들의 속셈을 잘 보여준다.

1945년 11월 임화가 남긴 ‘발자욱-붉은 군대를 환영하기 위하여’에 보이는 “아아 승리와 영광에 빛나는 스탈린그라드의 용사도 왔구나. 그대들이 가져 오는 것은 우리의 영토인가. 그대들이 들고 오는 것은 우리의 기(旗)ㅅ빨인가. 우리는 어느 것이 그대들의 것인지. 어느 것이 우리들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대목이 잘 말해주듯이,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좌파 지식인의 맹종에 가까운 소련 추종은 명백한 오류였다. “좌익 파쇼와 일부 공산당원들의 소아병적인 경향 때문에 민심이 공산당에서 이탈하고 있다. 젊은 공산주의자 중에 공산당을 유아독존으로 여기고 스탈린을 전지전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좌우에 치우치지 않았던 중도 성향 역사학자 김성칠이 남긴 1946년 2월 16일의 일기가 시공을 넘어 공감을 자아내는 오늘이다.

2012-06-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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