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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단일화 레퀴엠/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단일화 레퀴엠/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2-11-27 00:00
업데이트 2012-11-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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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단일화 파동은 해당 후보나 정파를 떠나 국가와 국민 차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민주정치의 길로 접어든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정치제도나 정치문화의 개선을 위한 국민적 담론이 아직 일천한 상황에서 단일화 과정을 통해 드러난 이슈와 열망의 새싹이 정치일정에 밀려 더 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이번 단일화 파동의 결말을 보면서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한 세 편의 애가(哀歌)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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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첫번째는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장치’가 무엇인가에 관한 절실한 바람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시간 연장과 결선투표제 논의, 그리고 단일화 노력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의사를 선거에 제대로 반영하려는 진지한 노력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결과가 불발에 그친 것이 어느 당에는 유리하고 다른 후보에게는 불리할 수 있겠으나, 국가 전체 차원에서 ‘더 나은 제도’를 위한 사회적 추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후보가 국민 모두에게 선택받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정치제도와 선거시스템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 일만큼은 미룰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들은 어느 누구도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했다.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까지 감안하면 이들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더욱 떨어진다. 단순한 지지율(투표율×득표율) 공식으로 계산해 보면, 민주화 이후의 역대 대통령은 30~35%의 유권자 지지만으로 당선됐다. 국민의 3분의2는 당선된 대선후보를 거부했거나 무관심했던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결선투표제 등 제도적 보완장치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나무랄 수 없다. 그런 장치가 없는 지금의 제도 하에서 단일화 노력은 누군가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고육책이었으리라.

두번째는 ‘대의제’에 대한 적극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외침이다. 구체적으로 국회의원의 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제안도 여기에 해당하지만, 근본적으로 의회제도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국민주권의 원칙이 구현되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대리인’들을 선출해서 정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인’의 권리를 위임받은 대리인들이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거나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늘면서 국회와 정당이라는 대의제 기구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커져왔다. 그래서 지난 총선 때 드러난 정당정치의 한계와 그에 대한 실망감이 이번 대선에서는 ‘새 정치’라는 구호로 이어졌다. 사실 오늘날의 기술 수준으로 볼 때 직접민주주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굳이 ‘대의제’를 택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방법은 많다. 정당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옮겨 가는가가 과제일 뿐이다.

세번째는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성’의 정치를 향한 열망이다. ‘소통’은 오늘날 정치행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소통행위의 요체는 일방적인 설득이 아니라 쌍방향 상호작용이라는 점이다. 이때 서로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감성적 교감이다.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익과 비용을 계산하고 기대수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성’(rationality)의 기준에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새 정치’나 단일화에 대한 요구를 접하면서 이성적 판단뿐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와 열정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소통은 이성적 논리와 계산을 바탕으로 한 정치공학만으로 구현할 수 없다. 기존 정치제도에 충분하게 반영되지 못했던 분노, 수치심, 양심, 열정의 가치들이 정치판에 반영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소통과 참여를 가능케 하는 ‘합당성’(reasonableness)의 기준이 들어설 수 있다.

단일화 파동을 거치면서 대선 후보들의 부침이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금의 단일화 드라마가 이들 중 누군가에게 슬픈 애가로 막을 내리겠지만, 그것이 다음 선거에서 또 다른 애가를 만들어 내지 않게끔 정치제도와 정치문화의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그렇게 슬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2012-11-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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