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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798예술구’의 반면교사/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798예술구’의 반면교사/김정현 소설가

입력 2013-04-24 00:00
업데이트 2013-04-2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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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는 ‘798거리’라는 예술구가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가 되었을 정도이니 그 위상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을 터. 798거리는 1950년대 구소련의 원조로 만들어진 군수공장 지대였다. 이후 냉전 종식과 도심권 확장에 따라 공장이 떠나고 전자타운이 조성될 계획이었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렇게 폐허가 된 공장들에 2000년대 초반부터 반체제적 성향이 농후한 예술가가 하나둘 모여들며 자연스럽게 예술타운이 되었다. 억압에 대한 반항과 비틀기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된 중국 현대미술의 실질적 탄생지이기도 한 셈이다.

막 예술거리가 조성되던 시절의 798거리는 묘한 긴장 속의 생동감으로 관심 있는 이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도발적인 작품이 주는 긴장감과 실험을 넘어 허술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전정신이 주는 생동감이었다. 소문이 퍼지고 사람의 발길이 늘어나자 돈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초기에는 순수함이 있는 예술적(?) 자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화랑이 늘어났어도 그 크고 작은 규모처럼 다양한 작품을 모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획일화되지 않은 예술거리였고 자유가 느껴지는 해방구였다. 자유와 예술을 사랑하는 세계인의 관심이 모아진 것은 자연발생적인 현상이었다.

어쩌면 그런 해방구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당초 시선은 곱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베이징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다. 2006년, 당국은 798거리를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해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벌였다. 그에 발맞추듯 중국 내외의 자본도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예술구를 만들고 지켜오던 작은 화랑은 밀려나고 대형 화랑과 기름기 번들거리는 편의시설이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함께 798거리는 세계적인 예술구로 화려한 명성의 정점을 찍었다. 한번 얻은 명성이니 798거리는 오늘도 성황이다. 그러나 이제 798예술구에 예술가는 없다. 당연히 예술도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덩치 큰 화랑의 이름과 거품 가득한 가격의 조잡한 예술모방품, 옷가게, 카페, 식당뿐이다. 뭔가 눈에 그려지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서울 인사동과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 지금 청와대에선 ‘베이징 798거리 열공 중’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창조경제’가 화두인 세상이니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우려가 앞섰다. 우선은 창조, 특히 문화의 창조에 관권(官權)의 개입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환경적·경제적 지원은 절실한 요건이다. 그러나 문화의 바탕이 되는 창조 혹은 예술행위의 바탕은 무엇보다 자유이다. 생각이든 실험이든 실행이든 일단은 억눌리지 않는 자유의지의 상상력이 먼저이고, 다음은 그 자유의지를 견제하지 않는 조건 아래에서의 적극적 지원이다.

관권과 자본이 밀려들며 창조는 사라지고 조잡한 상거래만 남은 결과는 몰락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당장 열공 중이라는 798거리의 예술적 관심은 상하이로 넘어가고, 홍콩으로 돌아간 지 이미 오래이다. 제법 규모 크게 둥지를 틀었던 한국 화랑들도 모두 철수했다. 주축이 되었던 예술가들도 베이징 변두리의 다른 곳에 둥지를 틀어 작품 활동을 할 뿐 798거리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무엇을 열공 중이신지? 혹시 모르겠다. 798거리를 반면교사로 삼자고 열공 중인지도. 그렇다면 안심이고 대환영이다.

꽤 관심 깊게 지켜본 관람객으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이렇다. 첫째는 지원이다. 그것도 얼마간 지원한다고 생색 내지는 감독하겠다는 어떤 틀을 만들지 않는 조건에서. 예술적 창조, 과정에 대한 보고나 성과의 강요는 안 하느니만 못한 독약이다. 그럼에도 대개는 무슨 위원회 운운으로 명망 높은 이들의 권위에 기대는데, 과연 권위 아래에서 빚어져 나올 창조가 있을까? 두 번째는 규제다. 창조의 규제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규제. 798거리를 지켜보며 편의시설 운운하는 상업자본의 예술구 내 진입을 울타리 밖으로 유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형 예술자본에 대한 무조건적 환영이나 방관도 마찬가지이다. 규모의 자본은 그만큼 강요가 되고, 그런 강요는 획일화되어 창조성을 억누르게 될 테니 말이다.

2013-04-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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