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재외 한국문화원을 다시 생각하며/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재외 한국문화원을 다시 생각하며/김정현 소설가

입력 2013-06-04 00:00
업데이트 2013-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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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소설가
김정현 소설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혜안이었고 언제나 새롭다. 뼈저린 가난의 세월을 넘어서 마침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되었지만 뭔가 속 빈 강정 같은 허전함을 느끼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나마 ‘대장금’이나 ‘강남스타일’같이 민간의 역량으로 우리 문화의 힘을 세계에 알리는 성과가 빛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진작부터 세계 주요국에 한국문화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테고.

문화의 기본은 무엇보다 상상력이고, 그 상상력은 자유 의지와 열린 환경을 토양으로 한다. 모두가 기름진 밭이라고 여겨도 씨앗의 종류에 따라서는 소출이 적을 수도 있고, 때로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문화의 씨앗을 제대로 수확하려면 여러 모험에 대한 용인과 오랜 인내의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자세는 관리자의 몫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을 주도하는 이의 자질과 의지이다.

다시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윤창중 사건’에서도 한국문화원이 입방아에 올랐다. 관료적인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각국에 설립된 문화원장은 민간공모 형식으로 발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얼핏 보아도 창조적 문화 행사로 주재국 국민과의 우호적 민간외교 성과를 거둘 만한 인사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에 줄을 댄, 문화와는 도무지 관련 없었던 이거나 관료에서 퇴직 형식을 밟아 주저앉은 이들이 대부분이라면 너무 무색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설립된 다른 선진국의 문화원은 우리들의 젊은 날에 끼친 영향이 자못 컸다.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영화나 전시·강연 등을 통해서 그들의 예술 세계를 동경했고,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대화로 낯선 세상을 이해했다. 그것은 흉금을 터놓을 수 있는 터전이 되었고, 그로써 자국에 우호적인 친구들을 만들었으며 외교정책의 중요한 자료를 쌓아갔다. 문화원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문화원장은 문화와 관련 없는, 자국 고위인사들이 나타나는 장소마다 얼굴을 내비치느라 바쁘다. 문화원에서 가장 크고 번듯한 곳은 문화원장실이다. 직원들은 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바쁘고 별것도 아닌 행정업무에만 전념한다. 애초에 잘못 뽑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걸 원장이 원하는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해오던 프로그램의 연장이 문화원의 주된 업무이고, 어쩌다 행사 하나를 치르면 생색내기에 바쁘다.

문화원의 행사는 원장의 치적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주재국 국민과 소통하는 마당이고 놀이여야 한다. ‘폼 잡는’ 의식보다는 함께 어우러져 뒹굴 수 있고 웃음이 터져 나와야 비로소 마음을 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기이한 미술이나 음악이면 어떤가. 기이해서 고개 갸웃거리고 입술을 삐죽이더라도, 자신들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면 발길은 한 번 더 할 수밖에 없을 텐데. 한국어 강습이야 당연히 있어야 할 프로그램이지만 왜 강연, 강습, 전시로 보여주고 가르치려고만 드는 건지. 내가 잘났고 내가 최고라는데 어느 쓸개 빠진 이가 속없이 드나들고 넘어가겠는가. 겉으로는 고개 끄덕여도 속으로는 비웃음이나 지을 뿐이지. 게다가 민감한 사안의 정치적 함의를 담은 전시에 왜 하필 문화원이 나서는 것인지. 그야말로 원장의 관료적 치적에나 도움이 될 뿐 문화에는 초를 치는 노릇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댄 이거나 관료 출신에게는 정말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다.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영역이 다른 까닭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 민간의 한류 바람으로 세계가 들썩이는 이면에서 바닥을 다지고 바람 역할을 해주는 기지가 문화원 아닌가. 그곳에는 그야말로 재기발랄, 엉뚱한, 넘쳐나는 상상력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꿈의 마당을 만들어낼 자유인이 있어야 한다. 더하여 순방하는 대통령이나 고위, 저명인사가 불쑥 나타나 잠깐이라도 놀이에 끼면 금상첨화일 테고.

2013-06-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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