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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세월호의 영령들이여, 용서하소서/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열린세상] 세월호의 영령들이여, 용서하소서/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입력 2014-04-28 00:00
업데이트 2014-04-2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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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김주성 한국교원대 총장
온 국민이 슬퍼하고 있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금쪽같은 아들딸들을 보고 끓어오르는 서러움을 억누를 수가 없다. 온 국민이 미안해하고 있다. 어른들이 못나서 지켜주지 못했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이들에겐 어른들이 정부이고 국가일 텐데, 어른들이 꾸며놓은 세상이 얼마나 허술했기에 그 많은 아이들이 사지(死地)로 몰렸을까. 조선산업의 최강국이라 자부하는 나라에서 중고선박들을 수입해선 무리하게 개조해 운항했으니, 우리의 연안해로가 중국의 차마고도보다도 훨씬 더 위험천만했으리라.

사고경위가 밝혀지면 밝혀질수록 우리의 행동체계가 얼마나 어수룩했는지 자괴감만 커진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오전 8시 48분부터 선체가 완전히 뒤집힌 10시 31분까지 황금 같은 1시간 43분 동안 우리는 갈팡질팡, 허둥지둥 갈피를 못 잡고 헛손질만 해댔다. 승객의 안전에 아랑곳하지 않고 구명도생한 뻔뻔한 선박지휘부는 끝내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을 들춰내고 말았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 최고속으로 “빨리빨리” 국가를 건설하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차례차례 이뤄냈다고 자부했다. 이제는 아들딸들에게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를, 배우던 나라에서 가르치는 나라를, 절망의 나라에서 희망의 나라를 물려주게 됐다고 자랑해 왔다. 선진국 사람들을 보면 열등감에 젖어들곤 했던 예전의 우리와 달리 어깨를 쭉 펴고 씩씩하게 세계를 누비는 아들딸들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자부심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금과옥조로 삼았던 “빨리빨리” 정신은 이제 시효를 다한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전 세계 사람들이 “빨리빨리” 정신으로 매진했던 우리의 집중력과 속도감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대충대충”과 “얼렁뚱땅”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세월호 참사는 이와 같은 “빨리빨리” 정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앞으로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지금으로서도 얼렁뚱땅 과적하곤 평형수를 빼내고, 대충대충 화물들을 결박하곤 안전수칙도 겉 넘었던 것 아닌가 짐작된다. 선진국에서 유람선들은 승객이 배에 오르면 각자 자기 선실에서 구명조끼를 들고 갑판으로 나오게 해서 한 시간가량 안전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승객마다 각자 배 안에서 어떤 경로로 빠져나와 어떤 구명정을 타야 하는지, 구명정에서 연막탄이나 조명탄을 어떻게 터뜨리는지 알려준다고 한다. “빨리빨리”의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안전교육을 해 본 적이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빨리빨리 정신이 빚어낸 도덕적 해이를 날카롭게 인식한 프란체스코 교황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이 윤리적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태어나려 해도 “빨리빨리” 서둘러서는 물론 안 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대충대충”, “얼렁뚱땅”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와 같은 대형사고를 겪고도 또다시 쳇바퀴를 돌게 된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급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한 세월호의 영웅들이 우리를 일깨우고 있는 듯하다.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 친구들을 다 구해주고 나중에 갈게”라고 대답했던 박지영 승무원, “지금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끊어”라고 통화했던 양대승 사무장. 객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물이 머리에 차오를 때까지 밀어냈던 남윤철 교사. 자신의 첫 제자들을 지키려고 몸부림쳤던 최혜정 교사.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전수영 교사,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아이들을 탈출시킨 “또치쌤” 고창석 교사,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 준 정차웅 학생. 우리의 영웅들은 행동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차가운 바다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 영령들이여. 안식하소서. 용서하소서. 부끄럽사오나 다시금 다짐하나이다. 기본으로 돌아가 “뚜벅뚜벅”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나이다.”
2014-04-2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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