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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중국, 세계 농업을 사들이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중국, 세계 농업을 사들이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곽태헌 기자
입력 2015-02-06 18:16
업데이트 2015-02-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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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9월. 중국 육가공 기업 솽후이그룹은 세계 최대 양돈 기업인 미국 스미스필드를 약 5조원에 사들였다. 중국 기업이 인수한 미국 기업 중 최대 규모다.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정부 비축 대상일 만큼 중요한 관리 품목이다. 그러나 낙후한 생산·안전성 기술, 악화되는 사료곡물 경작 기반, 심화되는 환경·물 문제 등으로 중국 양돈 산업은 난관에 봉착했다. 의회 청문회까지 거친 이 기업 인수 거래를 두고 미국 일부에서 나온 비판은 중국이 자기 난관을 미국 국민 희생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세금으로 연구비를 조성해 개발한 공공 양돈 기술과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불하고 경작한 사료곡물로 돼지고기를 생산한 뒤 중국에 공급하고 발생하는 환경·물 문제는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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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지나친 비판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중국 정부의 해외농업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민간 부문에도 정부 개입이 광범위한 중국 경제 환경을 고려하면 거기에서 중국의 국가전략을 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 재정부는 예산보고를 통해 농식품 기업의 세계 진출을 장려하고 해외 자원의 적극적 활용을 지원한다고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중국 기업의 해외 농식품 기업 인수에 저리 융자를 제공한다는 것도 포함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중국 민간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가 국가 전략의 일환이고 이에 미국이 이용된다는 미국 일부의 불만은 근거 없어 보이지 않는다. 중국 국가 차원의 해외농업 전략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국영기업의 세계 농업 사들이기다.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국영기업의 이러한 활동은 국가 차원의 해외 농업 전략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중량그룹(COFCO). 중국 최대 국영 농식품 기업이다. 한국의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기능은 유사한데 사업 영역과 규모는 지난해 포천 500대 기업 가운데 401위에 포함될 정도로 세계적이다. 2012년 COFCO는 약 11조원의 준비금을 활용한 적극적 해외 진출 방침을 발표했다. 2000년대 초부터 자원·에너지 기업을 중심으로 펼쳐 온 중국 정부의 주출거(走出去·기업 해외진출) 전략에 농식품 기업도 참여한다는 의미였다. 마침내 COFCO는 지난해 10월 두 개의 대규모 국제 곡물기업을 사들였다. 약 3조 3000억원으로 ‘니데라’와 ‘노블’을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총매출 34조원에서 70조원 수준이 돼 종전 세계 4대 곡물기업 벙기를 능가하는 거대 국제 곡물기업으로 단번에 변신했다. 식량 안보를 위해 세계 농업을 사들이는 국가 전략이 보인다.

50년 전 일본은 농협이 앞장서 국제곡물시장에 진출, 가치 사슬 단계별로 차곡차곡 기반을 구축해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고도성장 결과물인 풍부한 외환으로 이미 잘 갖추어진 기업을 일거에 사들임으로써 50년 후발 주자의 간격을 단숨에 메우고 있다. 한국은 2011년 AT와 민간기업이 컨소시엄으로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국제적 곡물회사를 목표로 출발했으나 후퇴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한·중·일, 동북아의 식량 취약 세 나라 가운데 한국만 답보 상태다. 일본의 시간, 중국의 돈, 어느 전략도 쓸 수 없는 처지다.

관심 가는 소식이 하나 있다. 국내 한라그룹 미국 법인 ‘우리만’이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에서 곡물을 수집해 한국·중국을 포함, 동남아와 유럽 등지 10여국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모든 설비는 외주로 활용하고 소수 인력만으로 연간 22만t을 달성했다고 한다. 물론 독립된 곡물 회사로 서기까지는 아직 멀다. 또 민간기업의 이윤 목적이 국가의 공익 목적과 일치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 소식에 관심 가는 이유는 자체 설비 없이 사람만으로 버텨 왔다는 것 때문이다. 이것은 곡물 사업의 핵심이 설비 활용인데 외주 경험을 통해 복잡한 설비시장 구조를 파악하며 전체 곡물시장 생태를 바닥부터 익히는 사람이 키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사업의 근본이 되는 인력이 충분히 키워지고 자체 설비가 꼭 필요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적절한 공공·민간 제휴를 통해 상생 사업 모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한다. 이때는 종전과 달리 민간이 앞서고 공공이 뒤따르는 모형이 될 것이다. 세계 농업을 사들이는 중국 전략을 보며 답보하는 국가 곡물사업에 긍정적 자극이 되는 소식이었으면 한다.
2015-02-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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