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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서로 안고 쓰다듬으며 “지금 괜찮습니까”/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열린세상] 서로 안고 쓰다듬으며 “지금 괜찮습니까”/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입력 2020-03-19 17:32
업데이트 2020-03-20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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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TV도 없는 집에서 홀로 미취학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빴던 지난 수년간의 육아 패턴이 다양해져서 어떨 땐 예상치 못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움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였다. 학교에 간다는 기대감에 책가방과 이름표를 고르던 빛나는 눈동자가 기약 없는 개학 일정에 밀려 지루함으로 뒤덮일까 하는 걱정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동생들과 노는 것도 이제 한계에 임박한 듯 아이의 입에서 매일 튀어나오는 말. “엄마 나 학교 언제 가?”

작년 이맘때쯤 “오늘 지구가 망하더라도, 제발 개학만은 안 된다”는 한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의 사랑스러운 딸 예진(가명)이는 중증 장애가 있었다. 휠체어에 거의 누워서만 생활하며 옆에 챙겨 주는 사람이 없으면 화장실은커녕 물도 한 잔 마실 수 없었다. 돌 무렵 아이처럼 하루 종일 주변 물건을 잡아 빨기 바빴다. 장애가 워낙 중했기에 당연히 집 근처 특수학교에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덜컥 특수학교에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고, 설상가상 “집 주변 일반 초등학교도 장애학생이 ‘과밀’하니 덜 ‘과밀’한 초등학교 배정을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는다.

그렇게 배정된 학교는 예진이의 특수휠체어를 30분이나 낑낑 밀고 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초등학교를 2개나 지나쳐 왔다. 그렇게 도착한 교실은 놀랍게도 2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학교라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예진이는 4층까지 엄마 등에 업혀서 올라왔다. 예진이의 특수휠체어는 급식판을 올리는 리프트에 실려 올라와서야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개학 전날 이 사건을 접하고 뭐라도 해야 했기에 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목청을 높였다. 왜 법적으로 문제 있는 일인지 조목조목 따져들었다. 그 지난한 두 달의 싸움을 딛고 예진이는 적합한 특수학교로 전학 갈 수 있었다.

사상 초유의 한 달 개학 연기가 눈앞에 와 있다. 안전을 위해 더 연기하라는 목소리, 불안하게 언제까지 이렇게 개학만 미룰 거냐는 목소리가 앞을 다툰다. 청원도 등장했다. 학생 당사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도 뻗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모습이 피곤하고 힘들다는 생각은 왜 별로 들지 않는 걸까.

예진이 사건에서, 아무도 예진이에게 그리고 예진이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가 고민 끝에 입학유예를 신청했지만, 담당자는 예진 엄마를 학교 보내기 싫어하는 불량엄마로 단정 지으며 ‘그냥 애의 가능성을 좀 믿어 보세요’ 했다. 예진이가 울면서 학교에 입학하던 날, 특수학급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그 현장에 방치돼 있다가 병에 걸려 한 달을 입원하게 됐지만 아무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분초를 다투는 재난상황에서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귀찮고 불편한 일 취급을 받는다. 민주주의가 이래서 비효율적이라며, 이런 비상상황에서는 누군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상황을 착착 해결해 주길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신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지금 괜찮습니까?”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배려심 없는 자들의 불만처럼 취급되지 않고 서로 같이 살아가자는 연대의 정신으로 수렴돼야 사회는 더 안전해진다. 그래야 그 물음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냥 하루하루를 견디는 수많은 사람도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감염병 재난을 겪어 내면서 얼마나 서로 연결돼 있었는지 깨닫고 있다. 이미 돈이 만능인 세상에서 그렇게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어도 꿈쩍도 하지 않던 기본소득론이 재조명을 받고 있고, 많이 가진 사람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우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혐오의 재생산도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멈춰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게 견뎌진 이 시간을 지나 서로 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고생 많았다고 토닥이길 희망한다. 그 희망이 오늘을 버틸 수 있는 힘, (집에만 있어서 살이) ‘확찐자’라는 농담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 주리라 믿는다.
2020-03-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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