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 순수한 삼류건달 변신

창수는 다른 사람의 옥살이를 대신하고 돈을 받는 인천 차이나타운 삼류 건달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건달이지만, 아직 수총각이다. 어느 날 밤길을 걷던 창수 앞에 고급 승용차가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린 도석은 미연을 끌어내려 마구 주먹질을 한다. 창수는 말려보려 했지만, 외려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외모만 봐선 말도 섞지 않을 법한 둘의 짧은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에 빠진 창수는 반지를 사서 미연에게 청혼을 하려 한다. 하지만, 집에 와보니 미연은 이미 숨진 채 침대에 누워 있다. 알고 보니 여자는 전국구 조폭 두목의 애인이면서 조직의 2인자인 도석과도 얽힌 터. 경찰과 조폭들의 추적을 동시에 받게 된 창수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의 의지로 행동을 결심한다.

파이란 조감독이 만든 제2의 파이란 ‘창수’의 한 장면.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대된 ‘창수’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은 남자배우가 탐냈던 영화다. 평생 하류인생을 살던 삼류 건달이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를 위해 전국구 조폭과 10여 년에 걸쳐 외로운 대결을 펼친다는 영화의 얼개는 구식 누아르의 느낌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 창수 역을 임창정이 차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충무로는 반신반의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색즉시공’ 등 수많은 영화에서 임창정은 코믹연기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웬걸, 스크린 속 임창정은 영락없는 창수였다. “감히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나보다 뛰어난 연기자는 많지만, 창수를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던 임창정의 언급은 빈말이 아니었다.

주먹솜씨는 건달치곤 수준 이하. 하지만, 친동생처럼 아끼는 동료 건달 상태(정성화)와 사랑하는 미연(손은서) 앞에서 무슨 일이든 해결할 것처럼 허풍 떠는 창수에게선 짙은 연민이 묻어난다. 표정과 목소리의 울림만으로 임창정은 창수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기시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파이란’(2001)이 떠오를 것이다. 평생을 비루하게 살아온 인천의 삼류 양아치 강재(최민식)가 한 여인(장바이즈)의 사랑을 깨달은 뒤 조직 보스의 뜻을 거슬러 새로운 인생을 결심한다는 기본 얼개는 ‘창수’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창수’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늦깎이 신인 이덕희 감독은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을 보좌했던 조감독 출신이다.

부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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