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널사’·‘마녀의 연애’ 등 대만 드라마 리메이크 붐… 순정만화 스토리로 입맛 사로잡아

까칠한 재벌 남자와 평범한 여자, 실수로 인한 하룻밤에서 시작한 사랑…. 지난 2일 시작한 MBC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는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여자 미영(장나라)의 눈물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딘가 모자란 듯한 재벌 남자 이건(장혁)이 사랑 앞에서 어떻게 변해 갈지도 기대를 모은다. 둘의 하룻밤 불장난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떡방아를 찧는 장면으로 대체하는 발칙한 유머도 극의 백미다.

타이완 드라마 ‘패견여왕’(왼쪽)을 리메이크한 tvN ‘마녀의 연애’(오른쪽). 연상과 연하의 사랑을 그려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타이완 드라마 ‘명중주정아애니’(왼쪽)의 한국판인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오른쪽).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 같지만 하룻밤 실수가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그렸다.


‘운널사’의 원작은 타이완에서 2008년 방영된 ‘명중주정아애니’(命中注定我愛?)다. 지난 4월에는 연상 연하의 로맨스를 다룬 또 다른 타이완 드라마 ‘패견여왕’(敗犬女王·2009년)이 ‘마녀의 연애’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돼 tvN에서 방영됐다. 간간이 케이블 채널을 통해 전파를 타던 타이완 드라마들을 올 들어 국내 방송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리메이크하기 시작했다. ‘미드’의 영향을 받은 장르물과 한국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일드’ 리메이크작들 사이에서 방송가가 ‘대드(대만 드라마)’의 뻔하지만 달콤한 로맨스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순한맛-저자극·착한 스토리로 막장에 지친 입맛 살려

타이완의 트렌디 드라마는 ‘우상극’(偶像劇)이라 불린다. 국내 소개된 것들은 주로 일본 순정만화를 각색했거나 만화의 감수성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 천재 소년의 집에 얹혀 살게 된 평범한 소녀(‘장난스런 키스’), 재벌의 손녀로 변신한 억척 여대생(‘공주소매·公主小妹’)과 같은 설정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여성의 판타지를 자극하지만 ‘아가능불회애니·我可能不會愛?’(2011) 이전까지는 ‘유치하다’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뻔한 결말로 향하는 과정이 주는 설렘과 재미가 타이완 드라마를 즐겨 보는 이들이 꼽는 매력이다. 코미디와 멜로의 조화 속에 적극적인 구애와 과감한 애정표현이 흡인력을 발휘한다. 이혜선(39·여)씨는 “만화 같고 로맨스의 희망을 갖게 하며 달콤한 결말로 끝나는,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현정(28·여)씨는 “‘별에서 온 그대’는 유치하리만치 순수하고 설레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담아 인기를 끌었는데, 타이완 드라마에는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달달한 맛-별그대처럼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져

스토리가 복잡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타이완 드라마에는 절대적인 악인이나 인물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없는 편이다. 대신 ‘패견여왕’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들의 변화에, ‘명중주정아애니’는 갑작스러운 임신과 결혼을 겪은 주인공들의 성장과 깨달음에 집중하는 등 ‘착한’ 드라마에 속한다. 때문에 어둡고 난해한 장르물이나 막장 드라마 대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찾는 수요와도 맞는다. ‘운널사’를 홍보하는 드라마틱톡 권영주 대표는 “자극적인 전개나 악한 캐릭터,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 없이 보편적 감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퓨전은 필수-한국 문화에 맞게 맛깔나게 비벼야 성공

리메이크 드라마는 한국의 정서와 문화에 맞는 각색이 필수다. ‘마녀의 연애’는 한국의 골드미스 트렌드에 맞춰 원작의 여주인공의 나이를 33세에서 39세로 높였고, ‘운널사’는 이건의 혼사를 논의하는 종친회 장면을 넣었다. 그러나 타이완 드라마 특유의 만화 같은 설정과 캐릭터를 과하지 않으면서 맛깔나게 옮겨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과 타이완에서 드라마화된 일본 만화 ‘아름다운 그대에게’와 ‘장난스런 키스’는 타이완판은 크게 히트한 반면 한국판은 시청률이 저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중국 문화코드 연구’(2010) 보고서는 “원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연기력의 한계, 지나치게 만화적인 시선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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