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번방의 선물’ 용구役 류승룡

아직 그를 생각할 때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과묵하고 냉철한 킹메이커나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희대의 카사노바 캐릭터를 떠올린다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영화 ‘7번방의 선물’(24일 개봉)로 돌아온 류승룡(43) 얘기다. 그는 사실상 자신의 첫 주연작인 이번 영화에서 6세 지능의 지적장애인 용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18일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류승룡을 만났다.

영화 ‘7번방의 선물’로 첫 주연에 도전한 배우 류승룡. 그는 “관객은 냉정하다. 연기가 기대나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것밖에 못한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변신에 도전한 이유를 밝혔다.<br>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휴먼 코미디 장르는 처음인 것 같다.

-맞다. 처음이다. 그동안 악역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반전으로 순수함을 보여 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고정관념을 깨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휴먼 코미디는 평소 (배)고파했던 장르였고 도전해 볼 만한 캐릭터였다. 연출을 맡은 이환경 감독이 전작에서 가끔 나타나는 강아지 같은 순한 눈과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했다. 모험일 수도 있지만,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서 출연했다.

→사실상 첫 주연작이다. 카리스마를 포기하고 모험을 한 이유가 있었나.

-주위에서 첫 주연이라는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데 나는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전과 똑같이 열심히 연기했다. 무대 인사를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관객은 냉정하다고 생각한다. 계속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연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관객은 배우가 그런 연기밖에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배우는 여러 사람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카리스마적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동안 검증된 캐릭터에 대한 원금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투자를 했다면, 이제 위험을 떠안는 공격적인 투자를 해 보려고 한다(웃음).

→극 중 용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흉악범들이 가득한 교도소 7번 방에 수감된다. 하지만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순수함을 지닌 인물이다. 지적장애인 연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혼자 연구한다고 해결될 부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와 수차례 만남을 가졌다. 처음 말을 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고 도치법을 자주 쓰거나 발음할 때 각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굴리는 습관을 연기에 반영했다. 웃기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 상당히 치열하고 늘 촉각이 곤두서 있었다.

류승룡
류승룡
→용구는 지적장애인이지만 딸 예승을 끝까지 지키려는 눈물 나는 부성애를 보인다.

-용구는 비록 이성적인 판단이 흐린 6세 지능을 가졌지만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딸을 위한 괴력이 나온다. 그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가능한 보호 본능이다. 딸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아빠 노릇을 하려고 엄하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겐 두 아들이 있는데 딸 못지않게 애교가 많다. 용구의 어투와 표정을 한 뒤 거기에 제 마음을 대비시켰다. 부모로서의 감정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사회적 약자에 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지적 장애인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지난해 ‘내 아내의 모든 것’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연타석 흥행에 성공했다. 전성기 아니었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그야말로 기존의 이미지를 깨뜨리는 터닝포인트였다. 그때는 대중이 잘 모르는 내 장기를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주고 관심을 환기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친구들이 연기를 하나도 안 했다고 할 정도로 극 중 성기는 실제 내 모습과 흡사했다. 반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정중동의 캐릭터였다. 이전 작품에서 주로 액션을 많이 했는데 리액션과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을 유발시키고 권위를 주는 절제의 미학을 배운 것 같다.

→삼십대 후반 뒤늦게 영화판에 뛰어들어 명품 조연을 거쳐 주연 배우까지 올라갔다.

-연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연극을 했으니 상당히 일찍 시작한 편이다. 하지만 영화는 ‘박수칠 때 떠나라’(2005)가 데뷔작이다. 결과적으로 늦게 데뷔한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20대 때 영화판에 나왔더라면 많이 소모되고 실수도 많이 해서 문제를 일으켰을 것 같다. 시행착오를 혼자 감내한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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