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마리아나(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도 마찬가지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백화점에서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하는 마리아나는 사람 대신 마네킹과 대화를 나누고 마네킹을 애무한다. 의미 없는 관계에 매몰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터질 것 같다”며 포장용 ‘뽁뽁이’를 터뜨리기도 한다.
‘짧은 가을’과 ‘긴 겨울’, ‘마침내 봄’의 세 챕터로 이루어진 영화는 황량하고 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마리아나가 ‘월리를 찾아서’를 “내 인생의 화두가 된 책”이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월리’를 갈구한다. 그러나 “누구를 찾는지 알아도 못 찾는데 모르면 어떻게 찾을까” 자문하는 마리아나의 말에서 보듯 드넓은 도시에서 ‘월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신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온라인 채팅에 빠져든다. 이 영화를 “도시의 우화이자 대도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유머러스한 ‘건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는 구스타보 타레토 감독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가 폐쇄된 골방과 인터넷을 벗어나 바깥 세계에 발 딛는 순간에야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광고계에서 일하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감독은 영화에 자신의 취향을 집적해 놓는다. 우디 앨런의 영화와 라이카 카메라, 매킨토시, 임스 체어, 바흐의 골든베르크 협주곡 등이 영화 곳곳을 수놓는다.
영화적 소품을 통해 취향을 공유하는 즐거움이 있지만 진지한 주제의식보다 취향의 과시에 집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도 남는다.
애니메이션과 화면 분할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재기 발랄한 스타일로 미국의 영화 전문지 버라이어티에서 “우디 앨런에 반했으나 스타일은 미셸 공드리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다. 94분. 12일 개봉. 15세 관람가.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