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세 청춘의 성장기 코미디 영화 ‘스물’ 이병헌 감독

새봄을 맞아 생동감 넘치는 청춘영화 한 편이 찾아온다.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로 주목받은 이병헌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스물’(25일 개봉)이다. 주변에서는 젊다고 부러워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나이 스물. 감독은 세 청년을 통해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재치와 유머로 버무렸다.

장편 데뷔작으로 상업영화판에 처음 도전한 이병헌 감독은 바짝 긴장해 있다. “감독 인생으로 치면 나는 지금 스무살 즈음을 살고 있다”며 웃었다.<br><br>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영화 ‘스물’
영화 ‘스물’은 보고 나면 감독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여자 꼬시기와 숨쉬는 일이 전부인 잉여의 삶을 살고 있는 치호(김우빈)가 어느 날 영화 감독의 꿈을 꾸는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감독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1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35) 감독은 “20대를 잉여처럼 보낸 것은 맞지만, 치호처럼 부유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면서 웃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대학을 가기는 했지만 꿈이 없었기 때문에 20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어요. 아니면 주로 야구장에 가 있었죠. 어렸을 때부터 혼자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보고, 또 평점 매기는 노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긴 했어요. 집에서 빈둥대다 읽을 책이 떨어져 심심해진 어느 날 우연히 시나리오를 써 볼까 생각하게 됐어요. 용돈벌이 삼아 시나리오 공모전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입문했죠.”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고, ‘과속스캔들’ ‘써니’ 등을 각색하면서 영화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화 ‘스물’은 그가 스물 여섯살 때 쓴 시나리오로 처음으로 팔린 작품이다.

“실제로 제 주변에 경재(강하늘)처럼 명문대 출신 모범생으로 육군 장교가 된 친구도 있고, 동우(이준호)처럼 생활고로 좌절하다가 어엿한 샐러리맨이 된 친구도 있어요. 스무 살은 완전하게 성장하지 못한 상태의 어설픔이 있는 시간이잖아요. 연애나 우정에 대한 고민도 많지만 그걸 해결할 기술도 모자라는 나이죠.”

그가 되돌아본 20대는 “철부지에 자기중심적이고 노는 거 좋아하고 한편으론 고민하던 때”다. 영화 속 세 친구들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넘쳐 젊음을 발산하다가도 현실 앞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감독은 철부지처럼 좌충우돌하는 순간들을 감칠맛 나는 대사로 포착해 웃음의 진폭을 넓힌다.

“솔직해야 재미도 있고 공감이 크기 때문에 진짜 내 얘기처럼 전달하려고 했어요.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과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진부한 듯하면서 뒤에 살짝 비틀어 주는 반전 코드가 있는 코미디를 좋아하는데 이들의 어설픔을 십분 활용했죠.”

첫 상업영화부터 김우빈, 이준호, 강하늘 등 인기 절정의 20대 배우들로 성공적인 첫발을 뗐다. 하지만 감독 데뷔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영화 ‘써니’(2011)의 각색과 스크립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해 볼 계획을 세웠어요. 투자 심사에 들어간 영화가 한 편 있긴 했는데, 몇달째 감감 무소식인데다 이후에도 서너 편이 연거푸 투자를 받지 못해 답답했죠. 그래서 아예 신인 감독의 데뷔기를 소재로 자전적인 영화(‘힘내세요, 병헌씨’)를 찍었던 거죠. 그것도 후반 작업을 할 돈이 없어서 1년 반이나 질질 끌다 가까스로 개봉을 할 수 있었어요.”

‘힘내세요, 병헌씨’는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2~3편의 작품이 투자를 받지 못해 엎어졌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모아 둔 돈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은 할 수가 있었다”면서 웃었다.

둥글둥글 모난 데가 없는 이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윤성호, 강형철 감독의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 속 화려한 대사들은 멍 때리고 있을 때 나온다”는 그는 지금 자신이 영화 감독으로는 스무살 즈음이라고 말한다.

“블랙코미디를 만들고 싶어요. TV 드라마를 좋아하는 저희 엄마나 누나도 좋아하는 편안한 영화도 만들고 싶구요.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봐도 ‘이병헌 영화’라는 느낌이 드는 저만의 영화를 만들어야죠. 앞으로 그 색깔을 만들어 나가는 게 제 숙제인 거죠.”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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