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유래한 ‘파쿠르(parkour)’는 아무런 장비 없이 도시와 자연 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애물들을 이용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신체훈련법을 뜻한다. 처음에는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개발되었지만 현대에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고 높은 벽을 기어오르는 등 고난이도의 동작을 포함하는 일종의 익스트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곡예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액션 덕분에 ‘야마카시’(2001), ‘13구역’(2004), ‘프리러너’(2011) 등 영화에서도 종종 소개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다니엘 벤마요 감독의 ‘트레이서’(15세 이상 관람가, 19일 개봉)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테일러 로트너’와 전문 파쿠르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으로, 오감을 짜릿하게 만드는 파쿠르의 매력에 다시 한번 푹 빠져들게 한다.

자전거 퀵 배달부였던 ‘캠’은 사고로 우연히 만난 ‘니키’에게 반해 그녀가 속해 있는 파쿠르 훈련자(트레이서)들의 팀에 합류한다. 파쿠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팀원들의 호감을 사게 된 캠은 급한 빚을 갚기 위해 범죄에 가담했다가 결국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조직 내의 비밀과 배신, 로맨스 등은 비록 신선하거나 진중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어 이 스피디한 오락영화의 호흡과 강약을 조절한다. 내러티브의 단순함을 덮어주는 것은 역시 맨몸으로 공중을 가르는 트레이서들의 액션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점프와 가벼운 착지는 어떤 면에서 만화영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움직임처럼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파쿠르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한 듯 보인다. 스턴트, 와이어, 특수 효과 등을 최소화하고 날것 그대로의 액션을 추구한 연출이 영화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CF로 커리어를 쌓아온 다니엘 벤마요 감독은 위험천만한 파쿠르 액션의 세계를 정직하게 담아낸 다음 감각적으로 포장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실제 트레이서들이 훈련하는 것이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파쿠르를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개인의 심신을 단련하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캠이 처음 파쿠르를 배워 나갈 때도 ‘보이지 않는 것들’의 중요성을 듣게 된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부단히 연습하는 팀원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그러나 몇 마디 대사 외에 파쿠르 훈련이 정신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내러티브와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매트릭스’만큼의 철학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파쿠르의 고난이도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적 기재들이 좀 더 구체화되었다면 여러모로 더 깊이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트레이서로 변신한 테일러 로트너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유연하고 탄력 있는 몸으로 파쿠르 액션을 직접 선보일 뿐 아니라 따뜻한 이웃집 형과 로맨틱한 연인의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더이상 ‘늑대 소년’이라는 수식어는 불필요할 것 같다. 탁월한 캐스팅이 많은 장점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19일 개봉. 15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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