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자의 정신적인 외도라면 표현하기 오히려 쉬웠겠지만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라 연기하기가 어려웠죠. 전작인 ‘부러진 화살’ 때는 투사처럼 감정표현이 단선적이었다면 이번에는 복잡함 그 자체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추은주에 대한 감정을 들키는 장면에서는 어떤 눈빛이 될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 감정에 몰두하는 수밖에 없었죠.”
“그의 곁에는 죽어가는 아내가 있지만, 오상무 자신도 전립선비대증으로 오줌 주머니를 차고 늙어가는 중년의 남자입니다. 죽음의 냄새에 익숙한 그가 추은주의 살아있는 삶의 향기에 취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같은 거죠. 의도적으로 그런 향기를 쫓았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끌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오상무는 상상으로만 추은주를 취할 뿐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그는 “선을 넘어 실제로 행위가 벌어지면 다른 영화와 차별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절제된 선을 지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외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임 감독과 ‘취화선’(2002) 이후 12년 만에 만난 그는 “젊은 감독이라면 격한 표현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임 감독이라서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다. 임 감독은 연출에 관한 한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어느새 훌쩍 환갑을 넘겼어도 그는 변함 없이 왕성한 현역이다. ‘부러진 화살’의 주연을 꿰차고 ‘타워’, ‘톱스타’, ‘신의 한수’ 등에서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배우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노쇠하지 않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어떤 미션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공을 쌓고 스스로의 삶을 향기롭게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민배우’의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 내려놓은 것도 많다. 그는 ”일 말고 다른 욕심을 가지면 편할 수가 없다”면서 “유니세프 일을 제외하면 대인 관계의 폭을 줄이고 연기에만 충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영화계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영화계의 ‘어른’답게 책임감 역시 누구보다 크다.
“제가 한창 왕성하게 영화를 찍던 1970~80년대는 모든 것이 억압된 사회라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영화인은 상업적인 사랑이야기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컸어요. 제가 멜로 드라마보다 역사성이나 사회성 있는 작품에 주로 출연했던 이유였어요. 그때부터 영화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았으면 좋겠다는 사명감 같은 걸 가지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는 최근 부산영화제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대해서도 “부산시가 많이 애를 쓰고 있지만, 부산영화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인 만큼 아량을 보여 한발 물러나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에게 영화는 삶의 동반자이자 행복 그 자체다. 앞으로도 ‘라디오 스타’처럼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언제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그에게 나이듦이란 뭘까. “순리대로 거역하지 않고 사는 것이죠. 집착을 편안한 맘으로 내려놓고 삶에 임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삶의 정답이 아닐까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