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명화에 얽힌 역사의 비밀

아무리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세계적인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은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려한 황금빛 의상에 신비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을 그린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불린다. 세계 최고가인 1500억원에 팔린 초상화로도 유명하다.


9일 개봉한 ‘우먼 인 골드’는 이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흥미롭게 풀어낸 영화다. 사실 이 초상화는 클림트가 자신의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그려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죽고 난 뒤 남편 페르낭드는 1938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그림을 몰수당하고 그 그림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아델레의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이 가족의 추억이 담긴 그림을 되찾고자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무려 8년간 소송을 벌인 실화를 담고 있다. 마리아(헬렌 미렌)는 죽은 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한때는 가족 소유였지만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갤러리에 걸려 있는 클림트의 그림 다섯 점을 되찾으려다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이민자 친구의 아들인 젊은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라이언 레이놀즈)와 함께 반환 소송을 제기한다.

딱딱한 법정 영화로 흐를 수도 있었던 영화는 나치에 의해 단란했던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당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을 겪는 개인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며 휴먼 드라마로 장르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녀에게 숙모의 초상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자신의 뿌리이자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영화는 나치에 의해 몰수된 뒤 초상화의 제목이 바뀐 사연, 전쟁 이후 엉뚱한 이에게 넘어간 클림트 그림들의 행방 등을 쫓으며 관객들을 역사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몰입감을 높인다. 마리아가 조국 오스트리아가 아닌 미국 대법원에서 소송을 했던 과정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헬렌 미렌의 연기력이다. ‘더 퀸’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역을 맡아 관록의 연기를 펼쳤던 그는 이번엔 완고하고 까칠하지만 속정이 깊은 백발의 할머니 마리아를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특히 그가 법정에서 ‘반환’의 사전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무게감과 동시에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처음에는 돈 때문에 반환 청구소송에 참여했지만 그림을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의 국가적 차원의 은폐가 있었음을 깨닫고 점차 열혈 변호사로 변해 가는 랜디 역의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기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실화 영화의 힘은 잊혔던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의 삶을 비춰 보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한 뒤 아직도 찾아오지 못하는 지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은 영화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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