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폰 근로자들 “여가없는 로봇같은 생활”

　대만 훙하이그룹(鴻海科技集團)의 궈타이밍(郭台銘) 이사장은 26일 근로자들의 투신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팍스콘(富士康)사의 중국 선전(深천<土+川>) 공장을 방문,200여명의 보도진에게 수영장을 비롯한 각종 여가시설을 보여주었다.

　팍스콘사가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임은 물론이다. 훙하이그룹은 팍스콘사의 모회사이며,궈 이사장은 훙하이그룹의 창업주이자 대주주이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장에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팍스콘 선전 공장의 실외 수영장들은 근로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여가 시간이 부족해 수영장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시(廣西) 좡족 자치구 출신의 한 여성 근로자(21)는 이날 궈 이사장과 함께 선전 공장을 방문한 홍콩의 한 기자에게 점심식사 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수영할 시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공장에서 식당까지 다녀오는 시간을 포함해 점심식사 시간이 30분이 책정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실제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밖에 되지 않는다.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수준”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팍스콘은 아침 1.5위안,점심 4.5위안,저녁 5위안 짜리 등 하루 총 11위안(2천원)에 상당하는 식사를 종업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27일 공장을 방문했던 중국과 홍콩,대만 언론에 따르면 팍스콘 선전공장의 근로자들은 활기가 없었으며,매우 지친 모습이었다고 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의 기자는 “팍스콘의 근로자들은 감시카메라와 감독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로봇처럼 손을 놀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팍스콘 선전공장의 근로자들에게 책정된 봉급은 한 달에 900위안에서 1천50위안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온 이 공장의 근로자들은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거의 매일같이 잔업을 하고 있다.

　작업도중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는 등 규율이 매우 엄격하다고 근로자들은 전했다.

　허난(河南)성 출신의 한 근로자는 “감독관을 의식해 작업대에 앉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면서 3년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의 근로자들은 모처럼 쉬는 휴일에도 잠을 자는 것 이외에는 다른 여가 활동을 할 여력이 없다.

　초과근무 수당을 포함해 한 달에 1천800위안 가량의 월급을 받아 고향에 송금을 하면 500위안 정도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한 근로자는 “우리는 궈 이사장이 우리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봉급을 올려주기를 원하지만 그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자포자기 심정을 토로했다.

　궈 이사장이 팍스콘 선전공장을 방문하고 돌아간지 몇 시간 후인 26일 밤 이 공장에서는 남자 근로자 한명이 또다시 투신자살을 했다.

　팍스콘 선전공장에서는 지난 1월 23일 이후 4개월 만에 모두 12건의 투신사건이 발생해 10명이 숨지고 2명이 크게 다쳤다.투신을 시도한 종업원들은 모두 25살 미만이다.

　중국과 홍콩의 노동 전문가들은 팍스콘사 근로자들의 연쇄 투신사건이 이 공장의 근로여건 및 노동강도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궈위화(郭于華) 중국 칭화대 교수를 비롯한 9명의 중국 학자들은 지난 주 팍스콘사에 보낸 공개편지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팍스콘사의 기업문화 때문에 근로자들의 투신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선전시 노동단체도 성명을 내고 팍스콘사에 대해 근로자들을 존중하고 관리 방식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선전시 노동당국도 근로자들의 추가근무 등 노동조건이 연쇄 투신자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팍스콘사 선전 공장에는 총 42만여명의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으며,근로자 가운데 85%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태어난 농민공들이다.

　홍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