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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텍사스주 교과서 노예제 논란…”수동태 서술… 야만성 흐려”

美 텍사스주 교과서 노예제 논란…”수동태 서술… 야만성 흐려”

입력 2015-10-23 16:38
업데이트 2015-10-2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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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론 강사, “문장구성 원칙도 중요…단어 선택뿐 아니라 문법으로 역사 왜곡”

세계 곳곳에서 역사문제 인식과 역사 교과서가 국가 간, 또 국가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선 유난히 텍사스주의 사회관련 교과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역사, 지리 등을 통합해 다루는 사회 교과서에서 특히 미국 전역의 관심을 끈 대목은 노예제와 그와 관련된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기술 내용과 방법으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이 관심 있게 추적하고 있다.

보수적인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주 교육위원회가 지난 2010년 사회 교과 과정 지침을 자본주의와 공화당 정치이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폭 개정함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교과서가 올해 가을 학기부터 공립학교에서 일제히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지금까지 논쟁은 미국 남북전쟁의 원인으로서 노예제를 부차적인 요인으로 축소했다거나 노예를 ‘일꾼(worker)’이라고 표현했다는 등 기술 ‘내용’을 둘러싼 것이다.

그러나 2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다트머스대 문장론 강사 엘렌 브레슬러 록모어의 기고문의 논점은 “문법도 중요하다”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는 텍사스주 공립학교 학생 500만 명이 사용하기 시작한 새 교과서들 일부가 “단어의 선택을 통해서 뿐 아니라 비정치적이라고 여겨지는 문법을 통해서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 집필자가 문장을 어떻게 구성하고 무엇으로 문장의 주어를 삼을 것이며, 동사는 능동태로 할 것이냐 수동태로 할 것이냐 하는 것들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노예제가 전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래는 그가 예시한 문제의 문장들이다.

『일부 노예들은 자신들의 주인들이 친절하게 대우해줬다고 말했다. 일부 노예 주들은 자신들의 투자(노예)를 지키려고 노예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 그러나 가혹한 처우가 매우 흔했다. 채찍질, 낙인찍기, 그리고 훨씬 심한 고문, 이 모든 것들이 미국 노예제의 일부였다.』

록모어는 첫 두 문장은 ‘노예제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메시지도 문제이지만, 각 문장의 주어가 노예들, 노예주들 등 구체적인 사람으로 명시된 반면, 뒤의 채찍질 등에 관한 두 문장에선 사람이 빠지고 일반 명사만 등장하는 것에 주목했다.

앞 두 문장은 노예주들이 노예들에게 잘 해줬다고 명시돼 있지만, 뒤의 두 문장은 채찍질, 낙인, 고문 등 나쁜 일을 한 사람, 즉 노예주와 그 일을 당한 사람, 즉 노예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록모어는 학교에서 문장론을 가르칠 때는 명료하게 뜻을 전하기 위해 “가능하면 추상적 명사 대신 사람을 주어로 사용하고, 동사는 수동태 대신 능동태로 쓰라”고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고문수법이 사용됐다’는 문장은 누가 누구를 고문했는지 얼버무리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텍사스주 교과서의 노예제 대목도 노예제의 ‘긍정적인 면’을 기술할 때는 사람 주어, 능동태 등 문장론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면서, 노예제의 야만성에 대해선 집필자들이 “온갖 흐리기 수법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록모어는 주장했다.

그는 “노예 가족들은 종종, 그 구성원이 다른 소유주에게 팔림으로 인해 뿔뿔이 헤어졌다”는 수동태 표현도 노예주들의 역할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예주들은 종종, 노예가족 구성원을 다른 소유주에게 팖으로써 그 가족을 뿔뿔이 헤어지게 했다”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주어의 명시 여부는 국가 간 외교관계에서나, 남북한 간에서도 협상을 꼬이게 하거나 타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지난 2007년 대선 정국에서 BBK 사건과 관련,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설립했다” 발언에 ‘주어가 없다’는 해명을 둘러싼 논란, 최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총선 필승’ 건배 구호에 ‘필승의 주어가 없다’는 반론을 둘러싼 논란 등도 “문법이 중요하다”는 록모어의 주장에 현실감을 더해 주는 사례들이다.

록모어는 텍사스주 교과서 집필자들이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되 공화당의 보수적 역사관에 도전하는 것도 피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를 표시하면서도 “문법적 선택은 도덕적인 선택일 수 있는데, 이들 집필자는 그릇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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