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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군부 정치에서 손 떼나

태국 군부 정치에서 손 떼나

이석우 기자
입력 2019-03-23 10:00
업데이트 2019-03-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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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유력 야당의 하나인 민주당의 총리 후보인 아빗시 베자이바 가 지난 18일 방콕의 한 유세장에서 유세 도중 지지자들과 손을 맞잡은 채 사진을 찍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2018. 3. 18.  AP 연합뉴스
태국 유력 야당의 하나인 민주당의 총리 후보인 아빗시 베자이바 가 지난 18일 방콕의 한 유세장에서 유세 도중 지지자들과 손을 맞잡은 채 사진을 찍으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
2018. 3. 18. AP 연합뉴스
3·24 태국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014년 5월 쿠데타 이후, 군부 통치 5년만에 총선거이다. 전국 선거로는 2011년 7월 조기 총선 이후 8년 만이다. 정권을 장악해 왔던 군부가 전면에서 물러날 지 아니면, 민간 정당들이 정권교체를 이룰 지가 이번 선거의 초점이다.

특히, 1932년 입헌군주제도를 채택한 뒤, 19번의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치 전면에 나와있던 군부의 거취가 주목된다. 민간 정당들이 승리했을 경우, 군부는 순순히 물러날까?

그동안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승리했더라도, 군부는 자신들의 잣대를 갖고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 선거를 실시하면서, 자기 입맛대로 정국을 주도해 왔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의 대표국가의 하나인 태국 총선의 궁금증을 살펴봤다.

- 선거에서 패배하면 군부는 순순히 물러날까.

“ 당장은 승복하고 정국 추이를 보겠지만, 자신들의 기준과 잣대에 따라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19번의 쿠데타라는 기록이 보여주 듯, 태국 정치에서 군부의 정치 개입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정치에서 손을 떼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 최근 10여년동안 군의 역할이 더욱 활발해 졌는데.

“군부는 2006년 9월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농민과 도시 근로자 등 서민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탁신 친나왓 총리를 실각시켰다. 그 뒤 2007년 12월, 탁신 지지자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민중권력당(PPP)이 다시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1년 뒤인 2008년 12월 해산됐다. 이에 굴하지 않고, 탁신 지지자들이 중심이 된 푸어 타이당이 총선에서 이겨,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을 총리로 추대했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를 실각시켰다. 잉락도 오빠인 탁신과 함께 해외 망명중이다.

- 군부의 정치개입을 국민들은 순응했나.

“탁신 지지자들의 시위와 불복종 운동들이 일어났다. 탁신 전 총리가 창설을 주도하고, 탁신을 따르는 정치인들이 운영해 온 탁신계 정당들이 2001년 이후 선거에서 무패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탁신 지지자들과 탁신을 따르는 농민, 노동자 계층들이 군부 정권을 불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서 2009년 4월에는 친탁신파 ‘레드셔츠’들이 방콕 등에서 거리 시위와 점거 농성을 벌이다 군대와 충돌하면서, 정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 앞선 방콕대학 등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절반가까이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억압적인 정치 분위기를 보여준다.”

- 군부의 정치개입의 논리는 무엇이고, 어떤 입장을 펴고 있나?

“태국 군부는 자신들이 국가와 왕실, 민족주의의 수호자이며, 근대화와 국가안정을 이뤄낸 주역이라고 자부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은 정치 불안정과 사회 갈등 상황에서 자신들의 쿠데타가 이를 해소하고, 국가사회 안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지지자들도 태국적인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정치적 갈등을 푸는 태국식 민주주의의 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태국의 엘리트 계층과 왕실·군부·재벌 등 기득권층이 하나로 엮어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 왕실은 군부 편인가?

“입헌군주주의 제도아래 태국의 국왕은 정치 불간섭 및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정치 막후에서 깊이 개입해 왔다. 2016년 10월 서거한 푸미폰 아둔얏데 전 국왕은 재위 70년 동안 정치적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하며 절묘한 ‘정치 안정판’ 역할을 했다. 개인적인 역량과 카리스마, 노력한 정치 감각을 바탕으로 국민적인 사랑도 한 껏 받았다. 그를 계승한 마하 와치라롱껀 국왕의 역할은 아직 미지수이다. 왕실은 전통적으로 엘리트 군부를 지지해 왔다. 왕실은 군부, 엘리트 관료, 기업인, 도시민 등에 친화적이란 평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현 국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탁신 및 탁신계 정치인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상황이던지 그 역시, 조정자 및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이 집권하면 깨끗한 정치, 정치 안정이 가능할까?

“2001년 1월부터 2006년 9월 쿠데타로 실각하기 전까지 집권했던 탁신 전 총리는 농민 및 서민 친화적인 정책으로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농민들로부터 쌀 등 농산물에 정부 보조금을 얹혀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싸고 광범위한 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해 인기를 얻었다. 그 뒤 군부 정권이 들어선 뒤 농산물 가격 하락, 양극화 심화 등으로 탁신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그러나 반면, 엘리트 및 탁신의 비판자들은 돈을 뿌리는 정책이 결국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면서 그를 대중선동주의자라고 비판해 왔다. 이 같은 계층적 골, 이해관계의 차이와 함께 지역적 대립 등도 정치안정을 이루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게다가 경찰관 출신의 성공한 기업로, 통신 재벌을 일궜던 탁신은 깨끗한 정치가란 이미지 보다는 수완적인 사업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 탁신의 푸어타이당의 집권 등 정권교체가 가능할까?

“ 푸어타이당은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선두이고 군부 정권의 집권 팔랑쁘라차랏당이 이를 추격하고 있는 형세이다. 그러나 어느 당도 과반 의석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립 여당구성이 예상된다. 현재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은 부동층도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된다. 식상한 젊은이들은 젊은 기업인이 창당한 퓨처포워드당에 지지를 많이 보내고 있다. 결국 선거 이후 4개의 주요 정당들이 어떤 선택(연립 구성)을 할 지가 관건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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