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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지 않은 세탁물로 조부모 패션쇼, 팔로어 13만명

찾아가지 않은 세탁물로 조부모 패션쇼, 팔로어 13만명

임병선 기자
입력 2020-07-24 16:14
업데이트 2020-07-25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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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중의 리프 창 “할아버지네와 즐겁게 보냈으면”

대만 할아버지 창완지와 항머니 쑤쉬우에의 패션쇼 무대는 세탁소이고 옷가지는 모두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세탁물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대만 할아버지 창완지와 항머니 쑤쉬우에의 패션쇼 무대는 세탁소이고 옷가지는 모두 손님들이 찾아가지 않은 세탁물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70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해 온 할아버지 부부는 심심해 하셨다. 일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걱정 한 가지는 세탁을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대만 중부 타이중 시 훌리 지구에 사는 리프 창은 할아버지 창완지(83)와 할머니 쑤쉬우에(84)가 10년이 넘도록 고객들이 찾아가지 않은 옷가지들을 직접 걸치는 모델로 패션쇼를 하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리프의 목적은 할아버지 부부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구 5만명 밖에 안 돼 아무 일도 생길 것 같지 않은 곳에서 두 분이 따분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르신들의 삶이 생각보다 대단할 수 있음을 발견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또 깜박 잊고 찾아가지 않은 자신의 옷을 발견한 이들이 세탁물을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덤이었다고 24일 영국 BBC에 털어놓았다.
세탁소 세탁기와 천정에 매달린 세탁물도 훌륭한 패션쇼 무대 배경이 된다. AFP 자료사진
세탁소 세탁기와 천정에 매달린 세탁물도 훌륭한 패션쇼 무대 배경이 된다.
AFP 자료사진
그런데 할아버지 부부가 펼친 파격적인 패션은 인스타그램에서 큰 화제를 모아 전 세계에서 13만명이 넘는 팔로어가 생길 정도였다. 쑤 할머니는 “나 같은 노인네 사진을 보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예전이라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웃었다.

리프는 패션 감각이 뛰어난 친구들에게 부탁해 셔츠, 바지, 블라우스, 치마, 액세서리로 코디하는 방법을 조언 받고 지갑, 모자, 선글래스 등을 빌리기도 했다. 할아버지네 오래 된 가게의 세탁기와 건조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패션 잡지에나 실릴 법한 사진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마치 쿠바 하바나에 휴가 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할머니는 너무 날씬해서 또래 어르신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창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옷이 너무 비쌌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소달구지에 쌀을 스무 봉지는 실어야 양복 한 벌 살 수 있었다. 또 돈이 필요하면 전당포에 옷을 맡기고 융통할 정도였다”며 요즘은 옷값이 너무 저렴해 세탁 맡기고도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그냥 이사 가 버리는 경우도 많고, 고인이 맡겨놓은 세탁물을 유족들이 신경 쓰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이혼을 비롯해 인생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면 세탁물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부부의 패션쇼를 기획한 기특한 손자 리프 창이 함께 승리의 V 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손자가 가끔 읽어주는 영어로 된 격려의 댓글이 삶의 활력소가 된단다. 인스타그램 캡처
할아버지 부부의 패션쇼를 기획한 기특한 손자 리프 창이 함께 승리의 V 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손자가 가끔 읽어주는 영어로 된 격려의 댓글이 삶의 활력소가 된단다.
인스타그램 캡처
할아버지 부부는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수백 벌의 옷가지를 자선단체에 기부도 했지만 여전히 수백 벌이 가게에 남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가끔 손자가 페이스북 팔로어들이 영어로 쓴 글을 번역해 읽어주는 것이 행복한 일과가 됐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보람은 또래 노인들이 스스로 유행을 선도할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고 말할 때라고 했다.

두 분 모두 은퇴는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창 할아버지는 아직도 입을 옷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다음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겨울 시즌 콜렉션” 무대를 갖고 싶다고 했다. 손자 리프는 할아버지네를 기쁘게 한 것은 물론 조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다른 사람들을 일깨워준 것이 보람차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부부는 늘 인스타그램 포스트 말미에 “세탁물 찾아가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적어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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