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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외로웠고 덩샤오핑은 행복했다”

“마오쩌둥은 외로웠고 덩샤오핑은 행복했다”

입력 2014-08-29 00:00
업데이트 2014-08-29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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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인민일보가 비교한 1·2세대 지도자의 말년

중국 인민일보가 두 국부(國父)이자 1, 2세대 지도자인 마오쩌둥(왼쪽·毛澤東)과 덩샤오핑(오른쪽·鄧小平)의 말년을 비교하면서 “가정은 지도자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 기사를 지난 27일 게재했다.


신문은 “각종 자료로 볼 때 마오는 말년에 고독했던 반면 덩은 그렇지 않았다. 덩이 위대한 업적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인내심(문화대혁명 때 박해를 받으면서도 마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 숙청을 면함)뿐 아니라 화목한 가정이 그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라며 덩의 끈끈한 가족애를 조명했다.

신문은 덩이 힘들 때 그의 ‘좋은 아내’ 줘린(卓琳)이 항상 곁에 있었고 문혁 때 많은 자녀들이 부모를 비판하고 등을 돌렸지만 그의 다섯 자녀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베이징대에 재학 중이었던 덩의 장남 덩푸팡(鄧樸方)이 주자파(走資派)로 몰린 아버지를 비판하라는 시달림을 피해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려 평생 반신불수가 됐지만 끝까지 아버지를 지지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덩의 가족은 1976년 문혁 직후 덩이 실각당한 뒤 탕산(唐山)대지진까지 겹쳐 온 가족이 텐트 속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도 함께 책을 보거나 카드 게임을 하는 등 캠프 온 듯한 기분으로 지냈을 만큼 가족애가 남달랐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임종 때도 부인과 자녀들의 품 속에서 행복하게 눈을 감았을 만큼 언제나 든든한 가족이 함께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마오는 혁명의 대장정 속에서 가족을 차례로 잃었다. 마오가 임종을 앞두고 병상에서 큰딸 리민(李敏)의 손을 잠시 잡은 것이 죽기 전 가족과 보낸 시간의 전부였다고 신문은 적었다. 마오의 첫째 부인 양카이후이(楊開慧)는 국민당 세력들에게 지독한 고문을 당한 뒤 처형됐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마오안잉(毛岸英)은 6·25전쟁 때 죽었다. 마오의 바람기를 참지 못해 집을 나간 것으로 전해지는 둘째 부인 허쯔전(賀子珍)과의 사이에서 둔 3남 3녀는 리민을 빼고 대부분 어린 시절 연락이 끊겼다. 셋째 부인 장칭(江靑)은 문혁 직후 자살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2014-08-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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