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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K2와 2주 전 낭가파르밧에서 스러진 발라드 母子 “호랑이처럼“

24년 전 K2와 2주 전 낭가파르밧에서 스러진 발라드 母子 “호랑이처럼“

임병선 기자
입력 2019-03-10 06:52
업데이트 2019-03-1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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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생애 마지막 등정이 된 파키스탄 K2로 떠나기 전 아들 톰 발라드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앨리슨 하그레이브스. 발라드는 2주 전 파키스탄 낭가파르밧에서 실종돼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1995년 생애 마지막 등정이 된 파키스탄 K2로 떠나기 전 아들 톰 발라드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앨리슨 하그레이브스. 발라드는 2주 전 파키스탄 낭가파르밧에서 실종돼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결국 아들 톰 발라드(30)의 주검도 파키스탄 낭가파르밧에서 발견돼 24년 전 200여㎞ 거리의 K2에서 스러진 어머니 앨리슨 하그레이브스(당시 33)의 뒤를 따랐다.

발라드는 이탈리아 산악인 다니엘레 나르디(42)와 함께 지난달 24일(이하 현지시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낭가파르밧 베이스캠프에 있는 자신의 팀과 마지막 교신을 한 뒤 해발 고도 6300m 지점에서 실종됐다. 지난 6일 마지막 수색 작업마저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른 산악인들이 희미한 실루엣들을 발견함에 따라 재개됐다. 스테파노 폰테코르보 파키스탄 주재 이탈리아 대사는 스페인 산악인 알렉스 특시콘이 머머리 스퍼 트레일에서 두 주검을 확인했다고 밝혔다고 BBC가 9일 전했다. 그는 이어 두 주검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산 아래로 옮겨 유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 돌려보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 산 정상에는 수많은 주검들이 방치돼 있어 ‘킬러 마운틴’이란 별칭으로 통한다.
영국 산악인 톰 발라드와 이탈리아 산악인 다니엘레 나르디가 텐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둘은 띠동갑 사이지만 호흡이 척척 맞는 파트너였다.
영국 산악인 톰 발라드와 이탈리아 산악인 다니엘레 나르디가 텐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둘은 띠동갑 사이지만 호흡이 척척 맞는 파트너였다.
영국 더비셔주 벨퍼 출신인 발라드는 1995년 여성으로는 처음 무(無)산소 단독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뒤 K2 등정 후 하산 길에 스러진 하그레이브스가 어머니였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양으로 천년을 사느니 단 하루라도 호랑이로 사는 게 낫다”고 되뇌었다. 야외활동을 강조하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산악인의 꿈을 키운 그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짐 발라드를 만나 산악 파트너가 됐고 나중에 결혼해 톰과 여동생 케이트를 낳았다.

1988년 7월 뱃속에 톰을 가진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알프스 아이거 북벽을 등정한 일은 유명하다. 어머니는 1994년 10월 첫 도전했다 실패한 지 6개월 만에 다시 에베레스트 여성 최초의 무산소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당시 그녀는 무선 교신을 통해 “톰과 케이트, 내 아이들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단다. 사랑한다. 너희들”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어머니가 K2에서 비극을 당하기 전 발라드는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로차버에 있는 포트 윌리엄스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알프스 등정 훈련에 맞춤한 곳이어서였는데 어머니는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못했다. 톰과 케이트는 세살 때부터 스키를 배워 영국 최고봉인 벤 네비스 등을 올랐다. 최근 몇년 동안은 이탈리아 돌로미테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톰 발라드는 영국 산악계의 촉망 받는 인재였다.
톰 발라드는 영국 산악계의 촉망 받는 인재였다.
친구 크리스 테릴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K2를 발라드 가족이 찾았을 때 동행했는데 “아주 각별한 탐사였다”며 “그 여행이 톰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그 뒤로 누구도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가겠다는 그를 말릴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지만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다 죽었다”고 말했다. 2015년 그는 한 겨울에 알프스의 6대 북벽을 모두 단독 등정한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영국에서 관록 있는 산악인으로 손꼽히는 앨런 힌케스는 모자의 죽음이 커다란 손실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힘든 산들 가운데 하나다. 특히 겨울에는, 뭐 하나만 잘못돼도 너무도 빨리 모든 게 끝나버린다”고 안타까워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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