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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로 불러 보란듯이 홀대하고선 딴소리하는 일본

창고로 불러 보란듯이 홀대하고선 딴소리하는 일본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19-07-13 22:39
업데이트 2019-07-1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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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철회 요구했나, 안 했나 ‘진실게임’

회의 장소·옷차림·악수 대신 냉대로 홀대
일본 측 “한국이 규제조치 철회요구 안해”
우리 측 “원상회복, 즉 철회 분명히 요구”
일본 거듭 “회의록 뒤져도 명확한 발언 없어”
경제보복 후 첫 만남, 불신만 확인한 채 끝나
국가간 회의 맞아?
국가간 회의 맞아?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오른쪽부터), 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왼쪽부터),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과 마주 앉아있다. 2019.7.12 연합뉴스
한일 양국 정부가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개최한 실무회의가 진실게임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 대표단은 일본 측에 수출 규제를 철회해달라는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으나, 일본 측이 한국으로부터 철회 요구를 받은 적 없다고 잡아뗐기 때문이다.

5시간 반의 마라톤 회의에서 아무 소득 없이 입장 차만 확인한 양측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관심이 쏠린다.

●일본 특유의 극진한 환대 ‘오모데나시’ 감춰

지난 12일 도쿄 일본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한일 양측의 첫 실무회의가 열렸다.

일본 문화 특유의 극진한 손님대접을 뜻하는 ‘오모데나시’는 온데간데 없었다. 우리 대표단을 의도적으로 홀대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극단적으로 회의 장소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테이블 2개와 사무용 의자 4개, 화이트보드가 놓인 장소는 국가간 실무자 회의가 열리는 곳이라고 보기엔 너무 초라했다. 심지어 우리 측이 앉은 의자 뒤쪽엔 쓰지 않는 의자가 쌓여 있어 창고 같은 인상을 풍겼다.

바닥에는 정리되지 않은 전선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고 곳곳에 파손된 의자나 책상 등 기자재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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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비즈’인가 ‘홀대 복장’인가
‘쿨비즈’인가 ‘홀대 복장’인가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열린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왼쪽부터)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이 입장 하는 한국 대표단을 외면하고 있다. 2019.7.12 연합뉴스
화이트 보드에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는 일본어를 프린트한 A4용지 2장을 이어 붙여놓은 모양새도 일부러 무성의함을 티내려는 듯했다.

먼저 자리에 와 있던 일본 측 대표단의 이와마쓰 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과장과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은 한국 정부 대표단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 입장할 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악수도 권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홀대 전략이었다. 예의를 갖춰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한 한국 대표단과 달리 일본인 참석자들은 셔츠를 돌돌 말아 올리거나 반팔 셔츠인 채였다.

오후 2시에 시작된 회의는 5시간 30분이 지난 저녁 7시 30분에야 끝났다.

우리 측은 일본이 한국만 겨냥해 수출 규제를 강화한 이유를 따져 묻고 설명을 요구했다.

일본 측은 한국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는 아니며 한국 정부의 무역관리에 문제가 있어서 취한 조치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5시간 넘게 있으면서 본론도 안 꺼냈다고?

회의가 끝난 뒤 일본 측은 “한국이 (수출 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 위반인 것에 대한 발언도, 일본 조치가 국제공급망을 손상시킬 것이라는 취지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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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단 뒤에 쌓여 있는 의자들
한국 대표단 뒤에 쌓여 있는 의자들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오른쪽부터), 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과 마주 앉은 채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2019.7.12 연합뉴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도쿄에 날아간 한국 정부 대표가 5시간 30분 동안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실무회의에 참석했던 당사자인 전 과장과 한 과장은 13일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출국하기 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과장은 “철회 요청이 없었다는 일본 측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일본 측 조치에 유감을 표명했고 조치의 원상회복, 즉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전 과장은 “일본 측은 어제 회의가 단순 설명이라는 입장에 한국 정부가 동의했다고 밝혔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어제 회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으로 협의로 보는 게 더 적당하다. 일본 측의 설명은 30분에 그쳤고 4시간 이상 우리 입장과 쟁점에 대한 추가 반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전 과장은 세계무역기구(WTO) 위반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항의가 없었다는 일본 측 설명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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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하는 한일 전략물자 수출 통제 실무회의단
출국하는 한일 전략물자 수출 통제 실무회의단 한일 전략물자 수출 통제 과장급 실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찬수 산업부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장(오른쪽),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 등이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2019.7.12 연합뉴스
그는 “일본은 이번 조치가 정당하고 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대항 조치도 아님을 한국 정부가 이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적극적인 반박에도 일본 측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경제산업성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회의록을 확인했지만 (한국 측이) (규제조치) 철회를 요구했다는 명확한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적반하장 “합의된 것 이상 말해 한국에 항의”

실무회의에 참석한 이와마쓰 과장은 되려 한국의 발언이 양측의 합의 내용을 넘어섰다며 한국 측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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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표정의 한국 대표단
심각한 표정의 한국 대표단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첫 실무회의에 참석했던 전찬수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장(오른쪽)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 13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입국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2019.7.13
연합뉴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성사된 양국의 첫 만남이 서로에 대한 불신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이번 사태의 조기 수습을 기대하긴 더 어려워졌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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